83. 된장국 앞의 세대차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2주 전, 한국에서 온 23살의 대학생이 우리 반 랭귀지 스쿨에 한 달 과정으로 단기 입학했다.

그즈음 나는 다음 단계의 반으로 업그레이드되었지만, 회화 실력이 부족해 그 친구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그 친구는 몰타의 환경이나 생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에,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며 그의 적응을 도왔다.


내가 가진 정보들이 돈을 받고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혀가며 터득하기엔 시행착오가 필요한 일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알게 될 정보일지라도, 초반엔 꽤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에 남기기 위해 그 친구에게 실명을 써도 되는지 물었더니, 실명은 부담스럽다며 익명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홍모 군’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몰타에 오기 전 약 2주 동안 유럽을 여행했다고 했고, 수업 이틀째 되던 날 내가 그 학생에게 점심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학생은 기꺼이 집으로의 초대에 응했고, 사전에 하우스메이트 아벨미에게도 양해를 구한 후 다 함께 인사를 나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간단한 요리를 준비한다고 해도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건 매한가지다.

한식을 해주고 싶었지만 재료가 마땅치 않아, 대신 야채를 듬뿍 넣은 ‘코리안 스타일’ 파스타를 준비했다. 양은 2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했다. 남으면 버리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고, 젊은 친구가 많이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파스타만 내놓기엔 뭔가 허전해 급히 된장국과 시금치무침도 곁들였다. 김치도 꺼내어, 제법 한국스러운 한 상을 차리게 되었다. 식탁을 보니 파스타와 반찬들로 공간이 꽉 채워졌고, 마음도 조금 든든해졌다.

요리를 자주 해 본 입장에서 맛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막 온 나이 어린 학생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조금은 걱정도 됐다. 그러나 그 친구는 파스타도 맛있게 먹었고, 특히 오랜만에 먹는 된장국과 시금치무침에 감탄을 쏟아냈다.

역시 한국인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걸까. 정성을 들인 작은 반찬 하나에 진심 어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며 나도 덩달아 뿌듯해졌다.


식사 후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자신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60대 한국인 은퇴자 임 모 씨에 대해 불편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학교에 와서 인사도 없이 자신에게 반말을 쓰고, 질문을 퍼붓는 방식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60대 세대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질문 세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세대에겐 그것이 일상적인 방식일 수 있다고, 그걸 무례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교 뒷길


그리고 임 모 씨에 대해서도, 평소 다소 급한 성격이라 대화가 거칠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솔직하고 시원한 면모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홍모 군은 또 다른 고충을 털어놓았다. 임 모 씨와 대화할 때 심한 구취 때문에 면전에서 이야기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내가 임 모 씨와 조금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그런 민감한 문제를 직접 지적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대화를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이든 가볍게 던졌다고 해서 가볍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말은 그것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나 말은 타인의 지적으로 고쳐질 수도 있지만, 결국 변화는 스스로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임 모 씨에게도 오기를 조심스럽게 바랐다.


그리고 오늘, 임 모 씨는 수업 중 우리 반을 다시 방문했다. 자신의 반에는 한국인이 자신 뿐이라며 외로움을 털어놓더니, 이내 또다시 홍모 군에게 다가가 집이 어디냐, 대학교는 어디 다니냐는 식의 질문을 쏟아냈다.


홍모 군은 처음엔 몇 마디 대답했지만, 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조용히 나가버렸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1층 로비에서 다른 한국인 학생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모국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웃음이 피어났다.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여기에서 사는 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단지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을 넘어서, 누군가의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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