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나는 왜 그토록 오르고 싶었을까?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갑자기 문득 떠오르는 주제가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은 과연 무엇일까?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계급’이라는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앞서가고, 또 누군가는 뒤따라가게 된다. 그런 위계는 동기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배, 팀장, 과장, 상무, 이사, 사장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층의 구조 안에서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살아가게 된다.

나는 입사 후 오랜 시간 동안, 그 구조에 대해 별 의문 없이 살아왔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받아들였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했다.


직장생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기술직이나 전문직이 아닌 일반 행정직으로 근무했다. 법령과 제도에 따라 행정처리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변화하는 법과 규정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부서 이동이 있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문제는, 실무자일수록 해당 업무의 전문가가 되지만, 그만큼 민원이나 외부 불만을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한 번의 이의 제기로 인해 두세 배의 노력이 더 들곤 했다. 그 반복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내 일에 대해 애정을 잃어버렸다.

특히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사람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각각의 욕망과 기준을 가진 존재다. 그들 모두가 조직과 시스템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균형을 잡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면, 관리자들은 업무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 조직과 흐름을 보아야 하니 자연스레 지시도 해야 하고,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하게 된다. 나 역시 직원이었기에 그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돌아보면 나도 온 에너지를 회사에 쏟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속해 있던 조직 안에는 정말 존경할 만한 관리자도 있었지만, 이른바 ‘깜도 안 되는 사람’이 고위직에 오른 경우도 분명 있었다. 어떤 이는 일선에서 묵묵히 오랜 세월을 버텨 정년이 가까워질 무렵 간신히 승진했지만, 정작 조직을 이끌 에너지는 부족해 보이기도 했다. 반면, 특별채용이나 경력직으로 일찌감치 승진한 사람들은 빠르게 조직의 중심에 섰지만, 직원들의 심리나 사정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가 더 나은 관리자였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험상, 정이 있고 배려심 많은 관리자들이 함께 일하기에는 조금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일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승진하고자 애썼다. 나뿐 아니라 많은 동기, 선후배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직장에서 물러나 한 발짝 떨어져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승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승진하면 좀 더 편하겠지’, ‘관리자가 되면 무시받지 않고 대우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지금은 되묻게 된다.

20240727_211806.jpg 성당 내부


“그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거였을까?”
“그 ‘승진’이라는 구조는 누가 만든 걸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직장을 영원히 다닌다면 모를까, 결국은 언젠가 그만두게 되어 있다. 그리고 직장을 나오는 순간, 그 모든 서열과 직책은 사라진다. 그걸 알고 나니, 그토록 집착했던 ‘승진’이라는 것이 한순간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승진이라는 구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조직이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장치이기도 하다. 모든 직원이 같은 일을 같은 급여로 평생 반복한다면, 조직은 탄력을 잃고 무너지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제도를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어떤 이들은 한 번의 낙점 실패로 깊은 상처를 입고, 조직 내에서 설 자리를 잃기도 한다. 때로는 ‘승진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그 낙인이 반드시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제도 자체가 사람을 소외시키는 힘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관리직에 올라간 사람들은 일시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만족을 찾기 위해 스스로 먼 길을 떠나야 한다.


결국 ‘승진’은 21세기 직장인이 조직 안에 머물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누구나 승진이라는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일찍 포기한 사람도 분명 있다.


나는 본래 진취적이거나 개혁적인 성향은 아니었다. 조직 안에서 묵묵히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조직에, 사회에, 그리고 삶에 너무 쉽게 길들여진 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84. 낯선 도시에서 고향을 만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