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soft의 호주에 내 둥지 만들기
호주 부동산 평가사 (CPV: Certified Practising Valuer) Feelsoft입니다.
드디어 이 글을 쓰게 되네요.
전부터 글을 올리겠다고 몇 번 언급을 드리긴 했지만 글을 쓰기가 조심스럽니다. 우선 Valuer로서 다른 직업에 대한 언급을 한다는 것이 같은 부동산업계 선수들 간에 그다지 권장할 일도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제가 무슨 반사이익을 얻거나 더 나아가 제가 뭐 10만이 넘는 호주 부동산 Agent들과 전면적을 불사할 만큼 대단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항상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지금부터의 글은 호주 부동산의 잠재적 소비자로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그러나 남들이 잘 말해주지 않는) 지식들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먼저 알려드리오니 불필요한 오해는 없으시기 바라겠습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
우리에게 참 친숙한 단어들입니다. 집 밖을 나가 가까운 버스정거장까지 가려면 최소 3군데는 지나처야 하는 곳이 바로 중개사무소고 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공인중개사들이죠. 무슨 일을 하는 분들인지는 너무나 잘 아실 테니 생략합니다.
호주에서는 Real Estate Agent들이 있죠
호주에서 우리가 부동산을 사려고 한다면 (거의)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내든 지방이든, 심지어 오지에서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주택은 물론 상업용, 산업용, 농업용 부동산까지 모든 부동산의 거래에는 이 Agent가 개입한다고 보시면 되고 얼핏 보기에 일도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부동산 매물을 알선하고 협상을 중개하는 우리들이 공인중개사를 통해 겪고 익숙해진 일들을 호주 Agent의 거의 대부분 동일하게 수행합니다.
내편인 듯 내편 아닌 내편 같은 그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주의 부동산 Agent들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Agent들이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의 균형된 중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중개사들이 있는 나라에서 살았으니깐요. 법으로 자격을 정하고 또 관리하는 그런 중개사들이 중간에서 협상을 중재하며 나의 이익도 대변하며 위험으로부터도 보호를 하니깐요. 그래서 매도자도, 매수자도 중개사들에게 기꺼이 수수료를 지불하며 아무도 그런 구조에 의심을 하지 않고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호주에서도 이런 중개가 없습니다. 아니, 있어서도 안됩니다.
호주에서 우리가 통상 지칭하는 Real Estate Agent는 양쪽의 균형된 조건에서 거래를 협상하는 한국의 중개업자와 달리 매도자 측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Seller's Agent) 일뿐입니다. 만일 Agent가 동일한 매물에 대해 한국과 같이 매도자와 매수자에게 수수료를 받는다면 이해상충 (Conflict of Interest) 문제로 자격을 취소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과 호주의 중개업 구조에 대해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내가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을 때 특별히 몇 개의 중개업소에 내놓으라는 제약이 없습니다. 매각이 급하면 동네 전체의 부동산에 다 내놓기도 하죠. (요즘같이 중개업소간에 온라인 협력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놓은 후 매수인이 찾아와 거래가 성사되면 그 중개업소는 매도자, 매수자 양 쪽에서 수수료를 취하게 되지요.
그러나 호주의 경우에는 중개의 개념이 시작부터 틀립니다.
만일 내가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놓는다고 이야기하면 Agent는 제일 먼저 계약부터 하자고 합니다. 속칭 독점중개계약(Exclusive Selling Agency Agreement)이라는 것인데 매도자와 중개업자는 이 계약서를 통해 많은 약속을 하게 됩니다.
'중개업자는 앞으로 몇 개월간 매도자를 위해 독점적으로 매물의 홍보와 매수자 수배를 할 것이며 이때 협상가격은 얼마이다.', '협상의 폭은 얼마까지 가능하며 수수료는 얼마이다.', '만일 매도자가 다른 Agent에 매물을 내놓거나 매도자 자신이 매수자를 찾아 거래가 성사된 때에도 수수료는 지급한다.' 등입니다.
위 계약의 내용이 바로 호주 부동산 Agent의 수익구조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되겠습니다. Agent는 이러한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고 매물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인터넷은 물론, 가가호호 전단지를 뿌려가며 가격의견서를 무료로 제공함을 홍보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독점중개계약이 체결되는 경우 매물은 당연히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Agent에게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매물을 시장에 홍보하고 적절한 매수자를 찾아 협상을 하게 됩니다. 물론 협상을 이끌어내는 가운데에서 매물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래에 법적 하자가 없도록 중간에서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습만을 보고 호주의 Agent가 균형된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오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 어리석은 믿음이 깨지게 되면 바로 '에이전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야' 혹은 (그 에이전트가 한인이면) '한인이 사기를 쳤다. 믿을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호주에서는 매매가 체결되더라도 Agent들은 매수인에게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매수인이 자금을 아낄 수 있도록 자상히 배려하는 것이 아니고 매도인을 위해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돈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즈니스 구조에서 Agent가 매수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가진 매물 안에서 가장 적당한 매물을 알선하는 것, 그리고 최대한 법적인 하자가 없도록 주의사항에 대해 사전에 안내하는 것,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가격협상? 얼마에 팔아보겠다고 매도자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한 후 독점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사람들이 다시 가서 가격을 깎아야겠다고 매수자의 의견을 얼마나 자신 있게 전달할 것 같나요?
Agent는 그냥 매도자의 이익을 위해 법 (또는 협회)에서 정한 규정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돈 한 푼 지불하지 않으면서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접읍시다.
상상 속의 호주 부동산 전문가
'공장용지'가 뭔지 다들 아시죠?
그렇습니다.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이런 땅을 한국의 지목에서는 '장'으로 표기합니다. 한국의 공인중개사라면 기본적으로 다 아는 기본지식이죠. 서울의 공인중개사든 제주도의 공인중개사든 할 것 없이 말입니다.
그럼 호주에서 E4와 C2Z는 뭘까요?
이 두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호주 부동산 Agent가 있을까요?
아니, Agent가 아닌 호주의 어떤 부동산 전문가라도 여러분들에게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몇 명 안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사람도 현실적으로 쓸데없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고요?
부동산에 관한 한 주/테리토리마다 법이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호주는 여러 개의 주/테리토리가 모여 만든 연방체제의 국가입니다. 즉, 호주라는 통일된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각 State/테리토리에는 자신들만의 토지 등록/관리 체제가 있었고 이는 통일이 된 이후에도 각 주/테리토리에 개별적으로 남아 통일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개념은 유사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다른 모습들을 보이고 있어서 다른 주/테리토리에서 일을 한 경험이 없다면 호주의 부동산과 관련한 이슈들이라도 생소한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E4는 NSW주에서 사용하는 산업용지의 Zoning 코드입니다. 그리고 C2Z는 빅토리아 주입니다. NSW에서 일을 하는 저는 E4에는 익숙하지만 C2Z는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비단 Zoning Code 뿐만이 아닙니다.
부동산의 등기가 다르고 거래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이 다릅니다. 개발의 절차나 관리감독 기관이 다르고 부동산 교육 관련 교육체제 또한 다릅니다. (호주는 교육도 주/테리토리마다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Agent는 자신이 속한 주/테리토리에 따라 각기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하며 다른 주로 이주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보완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시스템의 차이도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 거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전체 부동산에 정통하고 아우를 수 있는 부동산 전문가는 실제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이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블로그에서, 카페에서 호주 부동산 전문가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은 특정 지역, 특정 업종에 국한된 지식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Agent가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종합부동산서비스'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서비스 회사들이 이런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뭔가 얼핏 들으면 내가 필요한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사실 부동산이라는 것이 여러 업무가 얽히고설켜 있어서 단순히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죠. FIRB매입허가, 송금, 대출, 빌딩/페스트인스텍션, 법무, 이사, 임대/관리, 증축/개축/개보수, 세무 등등 줄줄이 엮여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돈 한 푼 받지 않는 Agent가 (멋있는 슈트를 입고 고급차에서 내려) 친절하게 모든 걸 알려주고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많은 Agent들이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많은 수고를 하며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허락되지 않은 업무 외의 능력까지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Agent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상호 간의 오해와 분쟁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분들의 자격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동산은 파는 사람이 주는 공짜 정보로 돌아가는 시장
그렇습니다.
어디나 부동산 시장은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들이 열심이고 또 입을 많이 엽니다.
그 덕에 우리는 많은 정보나 지식들을 얻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파는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지만 우리가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지식이나 정보도 있다는 것을.
그중의 하나가 파는 사람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은 글이 길어졌네요.
여러 가지 면에서 호주의 부동산 Agent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