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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soft Jun 17. 2024

호주 부동산 게임속 마녀, 그리고 호구들

Valuer가 보는 호주의 부동산 정책

호주 부동산 평가사 (CPV: Certified Property Valuer) Feelsoft입니다.


정치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는 아닙니다만 주택분야에 대해 한 꼭지 얹어보자면 국제적인 부동산 시스템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이미 자국 우선주의가 자본주의나 자유주의에 앞서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과도 일맥상통한데 호주에서도 중국을 대표로 하는 역외자본의 국내주택시장 잠식에 미디어가 일제히 민감한 보도를 내놓으며 이러한 반중 분위기에 기름을 얹었죠. 해외자본이 부동산 가격 변동의 한 원인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포퓰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FIRB를 통해 해외자본의 호주 내 유입을 규제한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이러한 비자유, 비자본주의적인 움직임은 팬데믹기간에 최고조에 달하는데 사실 팬데믹 기간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만들어놓은 기형적인 형태의 (그때는 뉴노말이라는 단어로 말장난을 했죠.) 초저금리와 양적완화에 의한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습니다. 사실 지금의 높은 주택가격의 주원인은 팬데믹 기간의 물리적, 정치적 국수주의/폐쇄주의와 평생 다시없을 초저금리가 만든 괴물이죠. 그걸 또 유학생과 이민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또 한 번의 마녀사냥과 다름없습니다.


호주에 계신 분들은 팬데믹 기간의 삼대장을 잘 아실 겁니다. VIC의 다니엘, NSW의 글라디스, 그리고 QLD의 아나스티아. 이 세 주의 주지사들은 (부동산 전문가의 시각에서)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WHO와 연방정부에 과잉충성을 하며 군사독재에 못지않은 무소불위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다니엘은 멜번을 세계에서 가장 격리를 오래 했던 도시로 만들었고 글라디스는 시드니를 주택공사도 할 수 없도록 빌더들의 현장출입도 막았죠. 부동산을 팔고 사기 위한 인스펙션은 허락된 소수만 가능했고 경매는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주택거래 대신 낮아진 이자율에 너도 나도 리파이낸싱을 하느라 난리였고 감정평가는 집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세 주의 부동산 시장은 고립되어 마치 세 개의 다른 섬나라처럼 분리되기 시작했고 두 주보다 혹독한 고립정책을 펼쳤던 VIC는 (시드니와 브리스번에 비해) 다시 뒤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상대적인 자산가치 하락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NSW와 QLD에 비해 벼락거지가 된 겁니다.) 이 삼대장은 팬데믹이 끝날 무렵부터 멋있게들 자리를 떴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팬데믹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라는 자찬을 하며.


2022년 스콧 모리슨 자유당 정부에서 촉발된 부동산 문제는 우-러 전쟁까지 더해져 안쏘니 알바니스 노동당 정권에게 더할 수 없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심지어 집권 초기에 추진했던 The Voice 헌법 개정까지 실패하면서 현 정권의 추진력과 신뢰성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개국 이전부터의 오류 (이 땅은 빈 땅이었다는 그들만의 신대륙-Nullism)를 풀고 대통합을 꾀했던 현 정부는 오히려 이제 전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주택대란의 화살을 돌릴 새로운 마녀를 만들어야만 했죠.


제 경험에 의하면 거시시장의 흔들림에서 오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은 한 나라의 정치적인 역량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다 악화시키기는 쉽죠. 한국의 임대차 3 법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국민의 불만을 어디론가 향하게 할 공공의 적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번에 그 타깃이 이민자와 유학생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프로파간다 속에는 유학생과 이민자는 언제든 우리가 문을 다시 열면 다시 올 거라는 정치인들의 자만심이 가득 들어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에어 BNB로 대표되는 단기숙소 역시 해외 관광객이나 단기 거주자들이 임대용 주택의 공급을 가로막고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며 제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현재의 주택가격과 임대료 상승은 도시국가와 다르지 않은 호주의 특성이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호주가 비록 지구상의 한 대륙을 거의 독차지하고 일인당 GPP가 6만 불이 넘는 대국일지 모르지만 Valuer인 제 눈에는 몇 개의 도시국가 연방일 뿐입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초고밀도 주택형태가 호주에도 대중화되고 있으며 이제 점점 주거공간의 규모는 작아지고 밀도는 높아질 겁니다.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뿐입니다.


호주의 주택공급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이민자, 유학생, 관광객이 팬데믹 이후 다시 늘었다고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자연재해처럼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주택공급 문제, 신도시 개발 문제를 이슈화해 왔죠.


호주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돌아보세요.

밤이면 그 흔한 오피스텔 하나 없는 텅 빈 비즈니스 타운. 대중교통으로 1시간에 도심에서 30km를 벗어나기 어려운 나라. 아직도 주거용이 대부분이 1, 2층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도시형 국가. 살 곳 없는 이민자보다 살 곳 없는 코알라가 더 소중해서 환경보호가 절대선인 국가. 


누군가 그랬죠. 정말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그냥 미디어가 만들어준 마녀를 욕하며 조만간 정부의 인텔리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조금만 견디면 모두가 집 한 채씩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으며 사는 거죠. 호주는 잘 사는 나라니깐.


그러다 내가 가진 자본으로 더 이상 부동산이라는 게임에서 버틸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자신이 그 게임의 호구였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당당하세요, 정작 집값이 올라 피해를 본 사람들이 우리들 이민자고 유학생들입니다. 우리는 가해자도 마녀도 아닙니다.


이런 류의 글이 자칫 정치적 색깔론이나 선민주의적 인문학에 스스로 매몰될 수 있다는 생각에 썩 내키는 주제는 아닙니다만 최소한 Valuer의 입장에서 호주의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한번쯤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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