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elsoft Jun 04. 2024

호주 주택 일만 채를 보았습니다.

Feelsoft의 호주에 내 둥지 만들기


호주에 온 지 18년이 되었습니다.

프로필에 간략히 적었지만 호주에서 Property Valuer라는 직업으로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Property Valuer는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이고 저는 주택, 즉 Residential 분야에서 일하는 Valuer입니다. 쉽게 말해 주로 은행 등의 대출금융기관 오더를 받아 하우스, 유닛 등의 주택을 찾아가 인스펙션하고 사진 찍고 시세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죠. (개인 비즈니스가 아닌 회사소속 직원입니다.)


그렇게 남이 사는 집을 10여 년간 쳐다보다 보니 그 수가 만 채가 넘었네요. 


그렇게 많은 집들을 오랜 시간 보다 보니 어느덧 집이라는 물질적 개체가 아닌 그 집속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호주에 모여사는 많은 사람들의 오늘 현재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몇 세대가 한집에 모여 시끌벅적한 사람들, 온갖 호화가구에 최첨단 자재를 둘러놓고 집부심에 사는 사람들, 자식들을 기다리며 공허한 수영장과 테니스장을 관리하는 중년의 부부, 알아듣기나 하는지 모르는 K-드라마를 틀어놓고 몰입하는 사람들, 갖난 아이들과 함께 놀며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듯한 엄마들, 게으름에 쪄들어 빛도 안 들어오게 커튼으로 창문을 막아놓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젊은 사람들, 동거인지 부부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이 뿜뿜 솟아나는 동성애자들,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모든 이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오지 히키코모리들, 늙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물도 하수도 없지만 끝도 안 보이는 커다란 대지에 오로지 말 달리는 것이 취미인 카우보이들, 보트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절벽 위의 주택에서 물만 보며 사는 아쿠아맨들... 이제 호주에 오시면 이런 분들이 여러분의 이웃이 되고 주민이 될 겁니다.


그렇게 집과 사람들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집과 사람이 닮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집도 건강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반면 희망과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그 집도 같이 쇠하고 낡아가지요. 굳이 집안을 보지 않고 집의 외관과 앞마당만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가 주 주거문화인 한국과 달리 호주는 이렇게 집과 사람이 같이 세월을 견디며 다양한 모습으로 성숙하며 늙어가는 거죠. 그래서 때로는 30년, 혹은 그 이상된 주택이 신축보다도 더 높은 대우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호주에서는 집이라는 건축물이 경제적 자산을 넘어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한 공간이 된다는 것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Survey Peg:  집이 지어질 땅과 주인이 처음 만날 때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표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기억될 좌표가 되겠죠.








작가의 이전글 호주 부동산 Off the plan으로 돈을 벌겠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