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 [분류]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중
막내 작가 3년 차, 강제로 메인의 자격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보통의 경우라면, 서브 작가는 지난한 인고의 시간을 거쳐 메인이 됩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서브 생활을 하며 내공을 쌓아야 비로소 프로그램의 전체 뼈대를 세우는 '메인'의 자격을 얻죠. 하지만 인생이 늘 계획대로 흘러가던가요? 저의 메인 입봉은 예고도 없이,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제 무릎 위로 뚝 떨어졌습니다.
"내 친구가 케이블 방송사 PD인데, 이번에 전파진흥원 지원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하나 새로 한대. 해외 촬영이고 국악 버스킹 컨셉이야. 메인 작가는 따로 있으니까 서브 겸 막내 역할 좀 해줄 수 있어?"
시작은 함께 일하던 PD님의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서브 역할', '해외 촬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페이가 얼마인지, 정확한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쳤죠!
"저 무조건 할게요!"
그렇게 프로그램 이름부터 국악 버스킹이란 컨셉을 어떻게 살릴 건지 기획부터 촬영 동선, 섭외까지 제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뿌듯했고 재밌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턱대고 떠난 해외 촬영, 막상 판을 벌이니 현장은 전쟁터더군요. 저는 긴 비행 시간동안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고, 화장실 한 번 못 갈 정도로 긴장했었어요. 그리고 낯선 해외 땅에 떨어지니 머릿속은 백지장이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운 실수들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현장에서 만난 한류 팬을 인터뷰하는데, 카메라 감독님 세 분이 붙었어요. 그런데 제가 긴장한 나머지 질문 두 개 정도를 던지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버린 거 있죠!
"작가님, 이게 끝이에요?"
메인 감독님의 황당한 표정과 질문에 얼굴이 불타오르던 그 순간은 지금도 이불킥 감입니다. 어찌어찌 '서브 겸 막내'로서의 몫을 다하고 귀국했을 때, 진짜 사건은 그때 터졌습니다.
"메인 작가 사정으로 원고 집필이 어려울 것 같아. 나프리 작가가 원고 쓸 수 있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촬영 팔로우까지만 제 역할인 줄 알았는데, 졸지에 70분짜리 다큐멘터리의 편집구성과 내레이션을 통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것도 화제가 될 만한 아이돌 내레이터까지 섭외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죠.
70분이라니. 5분, 10분짜리 코너 원고나 만지작거리던 막내에게 이건 감당 불가능한 '폭탄'처럼 보였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기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가 막내한테 70분짜리 다큐 메인을 맡기겠어요.
그 길로 짐을 싸서 고향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2주 동안 스스로를 유배시켰습니다.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모니터와 씨름했습니다. 레퍼런스로 음악 다큐, 국악 다큐를 수십 편씩 돌려보며 '구성'이라는 놈을 해부했습니다. 좋은 표현과 구성은 따로 정리해서 적용도 해보려고 필기도 하고요. 도대체 촬영한 영상을 통해 세상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메시지를 위해 어떤 컷을 붙여야 하는지,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선배의 조언도, 가이드라인도 없는 망망대해. 믿을 건 오직 '악'과 '깡'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메인 작가님이 한번 봐주셨지만 큰 수정은 없었기에 더 불안했던 대본은 놀랍게도 그해 케이블 교양 다큐 부문 대상이라는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결과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다면 그 기억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와 함께요. 하지만 그 무모했던 도전 덕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때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누군가 당신에게 감당하기 벅찬 기회를 던져준다면,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라며 뒷걸음질 치지 말고 일단 덥석 무세요! 해결은 수락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인생, 못 먹어도 고(Go)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