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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DY May 25. 2022

불안한 아빠와 느린 아이의 동행

천이백열여섯번째 아침, 굳은살

내 손바닥에는 작은 굳은살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나와 함께한 건지, 일상에 딱히 불편함은 느끼지 못해요. 그러다 주먹을 말아쥘 일이 있거나 손을 씻을 때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한 동안은 찜찜하고 신경 쓰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몸이나 마음 어딘가에 그런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가끔 보이면 계속 찜찜한 것. 사실 숨쉬기도 의식하면 수동이 된다는 유머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아이가 느리게 크고 있다는 사실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조금은 성장한 흔적일지 모릅니다. 한때는 굳은살로는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큰 통증이었으니까요. 대체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런가 보다~ 하면 딱히 느리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으로 의식하지는 않게 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안쓰러운 마음이 솟아오르면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무거운 마음에 낙담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아이와 병원을 찾았습니다. 아이가 어제 걷는 게 엉거주춤하다 싶더니, 성기가 꽤 부었습니다.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약을 발라 주려고 해도 “싫어요.”, 아프냐고 물어봐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안 아파요.” 하니, 사실 아이가 아플 때가 아이가 느리다는 것을 가장 많이 실감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다른 부모에게도 그렇겠지만 병원에 가는 것은 유달리 부담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는 진료실을 많이 무서워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 협조도 잘 안되는 편입니다. 의자에 앉혀서 청진기를 대고, 코, 귀, 입 안을 살피는 기초적인 진료 과정에도 몸부림을 치곤 합니다. 이제 4살인데, 2살처럼 움직이니 버둥거리는 걸 잡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젤리나 사탕으로도 달래지고,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볍습니다.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요. 의사 선생님이 살짝만 만져도 엄살을 부리는 아이가.     


대기 목록을 보는데 예약한 원장님과 달라 조금 의아하던 순간, “여기 도치가 또 있나봐.” 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흔치 않은 이름(그래서 이를 조금 숨기기 위해 도치는 제가 임의로 쓴 애칭입니다.)인데 성까지 같은 이름의 아이를 보니 신기했습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다른 도치’는 부모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는데, 우리 아이는 손가락만 빨며 반응이 없습니다. 괜히 민망해졌습니다.     


꽤 많이 부어서 표피염뿐 아니라 요도염이나 방광염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처방되는 항생제가 달라 소변 검사가 필요하답니다. 중...간 소변을 받으라구요? 종이컵을 받아들긴 했는데 40개월인 우리 도치는 아직도 소변이 마렵다, 안 마렵다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중간 소변은커녕 소변을 받을 수 있을 지나 모르겠네요. 어떻게 화장실로 꼬셔서 데려와 종이컵을 들고 “쉬해보자.”하는데 아이는 바깥 풍경만 보며 요지부동입니다. 평소에 집에서도 안 되던 것이 낯선 곳에서 될 리 없는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초조해집니다.     


그때 ‘다른 도치’가 아빠와 들어오더니 조금 실랑이를 하다가 어렵지 않게 소변을 받고 나갑니다. 같은 이름. 같은 또래. 같은 검사. 조금 허탈해집니다. 나중에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어떤 아이는 발표도 잘하고 친구와도 잘 노는데 우리 아이는 먼 곳만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슷한 기분일까요? 누군가 자신의 아이가 그래서 걱정스럽다고 한다면 ‘아직 애인데 뭘 그러세요. 건강하게 잘 크면 됐지.’ 하고 잘난 듯 말해줄 수 있을텐데... 제 일이니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키가 좀 작은 여섯 살 아이인가보다’ 라고 정신 승리를 해봅니다.     


결국 소변팩을 붙이고 받아오기로 하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도치와 부모가 같이 탔는데, 다른 도치가 우리를 의식하자, 사실 그 순간 “애기는 몇 살이예요?” 하고 묻고 싶은 것을 마음속으로 눌렀습니다. 도치보다 일찍 태어났거나 큰 차이가 안 나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적나라했기 때문입니다. 도치가 그렇게 느리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른 아이를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초라했습니다.     


약국에 갔는데 이름이 같아서인지 약을 처방해주시면서 “XX년 Y월 도치요~”라고 호명해주셨습니다. 이런. 그렇게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도치보다 6개월이나 생일이 늦습니다. 그런데 도치가 6개월이 지나도 저 아이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약국에 같이 들어 온 순간부터 눈으로는 도치를 살피면서도 내 온 신경은 그 아이에게 쏠려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아빠 신발끈 묶어주려고 했어. 으음. 이건 우리 집에 없는 거잖아. 난 이거이거 살래.” 유창하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유연한 반응, 부모와 일상적인 주고받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네 살 아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름이 같고, 더 일찍 태어났지만, 약국에서 젤리 사탕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고, 손가락만 빨며 저한테 눈길도 안 주는 두 살 아이 같은 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계속 말합니다. "이거 사줘. 이거 먹을 거야. 이거 줘."


사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까지 다른 아이를 의식하고 비교하려 들었을까요? 저는 대단히 이상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예전에는 더 이상해서 이럴 때면 하루종일 마음이 심란했고, 어쩌면 영영 우리 아이가 지금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불행한 미래가 확정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했습니다.    


이제는 많이 덜해졌는데도 사람이 변하려면 평생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가요. 그간 우리 아이도 제 속도로 많이 자랐음에도. 워낙 느린 아이니까 사실 한 24개월 정도 됐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지금 느린 게 계속 느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직면하는 순간에는 당장 생각대로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돌아보니 우리 도치도 저번에 병원에 왔을 때보다는 많이 컸습니다. 액자 속 그림을 보면서 “이게 뭐야? 이건 무슨 동물이야?” 물어보기도 했으니까요. 제게 나오는 대답을 기대하며 버튼을 누르듯 같은 물음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분명 신기하고 바라마지 않던 일입니다. 제가 데스크에서 소변팩에 관한 설명을 듣는 사이에 얌전히 잘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사실 도치는 도치의 속도로 잘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얼마나 갈지 모르는 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만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쌩쌩달리는 옆 차로를 보고 저 혼자 안달이 나버린 겁니다. 더 꺼림칙했던 것은 한 번 의식에 들어 온 손바닥의 굳은살을 한동안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이런 감정이 당분간 저를 붙들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또 글을 써보았습니다. 의연하고 느긋한 사람인 척하고 사는 나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부끄러운 마음의 요동을 이렇게 글로 털어놓는 것은 큰 위안이 됩니다. 오늘 저의 위안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2년 5월 2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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