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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킹가위 Jun 05. 2024

고전은 왜 읽기가 싫지?

작품에만 집중하기

고전 문학.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도대체 왜 많은 이들은 고전 문학을 읽기 싫어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말 그대로 고전(古典)은 예전부터 전해오는 글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훌륭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위대한 고전은 나의 책장에서 외면받는가.


고전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매체들이 너무 많다.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 자정을 훌쩍 넘어버린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고전이 외면받는 이유를 세상의 변화라든가 책에 대한 다른 미디어의 침공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그런 문제는 차치하고 문학적, 교육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문학을 감상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내재적 관점은 작품을 감상할 때 철저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작품 외적인 것을 배제하고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외재적 관점은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작가, 현실(시대 상황), 독자 등의 작품 외적인 요소를 고려하게 된다. 외재적 관점으로는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표현론, 작품이 쓰인 현실을 고려하여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반영론,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효용론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 문학 감상에서는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삶이나 그 시대의 현실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내재적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다른 교육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의 현실적인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학교는 예술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표현론이나 반영론적인 접근은 필요하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독자의 경우에는 작가의 삶이나 그 시대의 현실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율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표현론, 반영론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단 텍스트 그 자체에 너무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텍스트가 시인(혹은 소설가)과 작품 창작 당시의 사회·문화를 알리는 도구처럼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품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문학이 재미없는 이유는 문학을 통해서 다른 걸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는 거다. 억울한 문학에게는 면죄부를 발급해 줄 필요가 있다. 문학이 역사나 철학, 정치, 사회의 이해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때 가졌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시어들은 길을 잃는다. 작가를,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은 오히려 뒷전이 되어 버린다.


예전에는 '사문철'이라는 말을 써가며 역사와 철학과 문학이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것을 정당화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문학만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짧은 글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한다. 문학을 감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작품 그 자체만 남겨두고 그 외의 고려할 요소들은 다 버려도 좋다. 줄거리는 대충만 파악해도 무방하며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질문 한두 가지면 충분하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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