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 지도(地圖)’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산인지, 분간 안 되는 농도 짙은 안개가 자욱한 곳. 한 아이가 서 있다.
깡말라서 작은 몸피. 퍼진 안갯속에 형체마저 반은 먹혀서 겨우 보이는 아이.
아무도 없다. 혼자다. 아이는 홀로 안갯속에 갇혀 있다. 분명 엄마가 있었는데.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의 구분을 회초리 들어 가르치던 선생님도 있었는데.
‘벌을 받은 걸까.’
아이는 생각한다. ‘한 번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마음속의 말들이 심판을 받은 걸까.’
선생님이 나쁜 아이와 좋은 아이, 성공한 미래와 실패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는 생각했다.
‘치, 선생님도 나쁘면서. 선생님도 예쁜 아이와 미운 아이를 구분해 차별하면서. 선생님도 선물 들고 찾아오는 엄마를 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 차별하면서. 왜 지위 높은 사람이 되면 성공이라 하는지, 설명도 안 해주면서.’
어른들을 공경하라는 말을 들을 때면 아이는 생각했다. ‘치, 나쁜 짓 하는 어른들이 더 많으면서.’
그래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는데.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엄마.’
그래도 아이는 소리 내어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아이는 안다. 엄마는 이 짙은 안갯속에 파묻힌 자신을 구해줄 수 없다는 걸.
아이는 수없이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 꽃은 왜 펴?”
“응. 봄이 됐으니까.”
“왜 봄이 되는 거야?”
“응, 겨울이 지났으니까.”
“왜 겨울이 지나는데?”
“엄마 왜 마음은 갑자기 슬프다가, 화났다가, 좋다가, 하는 거야?”
“엄마, 왜 세상은 풀도 있고, 나무도 있고, 개도 있고, 뱀도 있고, 파리도 있고, 소도 있고, 개도 있고, 사람도 있는 거야?”
나중에 엄마는 대답했다.
“나중에, 크면 알게 돼.”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대답이 안고 있는 의미를 알게 됐다. “실은 나도 모른단다.”
‘아, 엄마도 모른다.
세상의 온갖 위험과 걱정으로부터 큰 우산이 되어주는 엄마. 우리 엄마도 모른다.’
그때부터 아이는 제 안에서 태어나 커지는 물음의 해답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두려움과 막막함은 짝이 되어 아이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때로 두려움은 아이를 덮쳤다. 때로 막막함은 농도 짙은 우울감으로 아이를 침묵시켰다.
한 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은 짙은 안갯속에 종종 아이는 홀로 서 있었다.
아이는 자주 두려움에 도망쳤다.
아이는 자주 우울이 주는 깊은 수렁 속에 몸을 담근 채 주저앉았다.
아이의 이름은 ‘째째’였다.
<마음 지도>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며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니 세 가지 커다란 방점이 찍히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풍경은 이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대학 입학 후, 모든 것은 ‘사라진다(無)’는 것을 알게 된 뒤 닥친 하루를 더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에 빠졌던 때.
마지막은 어느 순간 짙은 안개가 거치고 불투명하게나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던 때.
돌이켜보니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지난 삶은 오류가 많았다. 세상 전체를 알고 싶어 걸어온 나의 내비게이션은 많은 오류를 범했다.
내 삶의 목적지는 하나였다.
‘세상 전체를 알고 싶어.’
‘세상 전체를 알고야 말겠어.’
‘세상 전체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지.’
그러니까 내 삶의 목적은 우주, 아니 우주 전체를 내려다보는 곳까지 나아가는 거였다!
꿈도 야무졌다!
당연히 이 꿈은 슬픔과 고통을 예약해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 전체를 알지 못한 상태로 살 수밖에 없으니, 우왕좌왕은 필수 코스.
지금도 이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지나온, 꿈을 향해 걸어온, 마음 지도를 내보이기로 한다.
형식은 주인공 ‘째째’의 갈팡질팡 우왕좌왕 이야기. 그러니까 소설 형식과 덧붙이는 자유로운 에세이로 꾸려볼 예정이다.
당연히 째째의 이야기는 나의 경험을 가공하고 가상의 소재를 더한 소설적 ‘이야기’가 될 것이다.
부디 읽는 분들께 약간의 재미와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