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지?

<자유를 향한, 마음 지도> 2

by 이기담




째째의 발걸음이 투덜거린다. 뒤꿈치가 땅에 끌리다가 투둑. 툭툭.

째째는 오늘도 아이들 없는 하굣길을 혼자 걷는다. 째째는 오늘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학교에서는 ‘꿈 발표’ 시간이 있었다. 커서 되고 싶은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


“내 꿈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커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꿈이야 까짓, 아무거나 말해도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차례가 왔을 때, 째째는 말하지 못했다.

“제제, 왜 말을 못 해? 설마 꿈이 없는 건 아니지?”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웃었다.


“쩨쩨해서 그런가 봐.”
“맞아 쩨쩨해서야. 하하하.”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요란한데, 째째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서 말해 봐. 제제, 제제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다시 선생님이 묻고.
“하하하. 바보. 되고 싶은 게 없나 봐.”
까르르,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째째는 포위됐다. 모두가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거대한 물결, 거대한 힘. 째째는 그 집합된 ‘모두’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투덜, 투둑.

하굣길, 째째는 걷다가 중얼거린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하면 더 웃을 거면서.’

‘선생님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면서. 푸우.’

'모든 걸 알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르겠어. 모든 걸 알고 싶어. 세상 전체를 알고 싶어어!'


이것이 어린 째째의 마음에 자리한 질기고, 강렬한 '진짜' 꿈이었다.

아직 째째는 이 커다란 꿈을 위해 어른들이 원하는 '직업'들 중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가끔 뭐, 마음이 생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선생님이 되어 볼까?‘

'아니, 신문에 어떤 게 좋은 건지 알려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볼까?'

'아니 아니, 공부하는 학자가 되어볼까?'


하지만 이런 것들은 화장실 가기 전과 이후에 달라지는 마음과 비슷했다.

째째는 자욱한 안갯속에 갇힌 채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에 퐁당, 빠져버렸다.

짙은 안갯속에서 의문들이 몸을 부풀렸다.

어긋난 어른들의 강요는 가슴을 조여 온다.


’답답해.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감정들,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어 괴로운, 치열한 감정. 이것이 어린 째째의 마음에 자리한 질기고, 강렬한 진짜 '욕망'이었다.




덧붙이는 생각


얼마 전 신문에서 아동 신간에 대한 소개 글을 읽었다. 박성우 작가의 꿈에 관한 동화 <열두 살 장래 희망> 책.

'궁금한 건 잘 물어보는 사람' '편지를 자주 쓰는 사람' '무엇이든 잘 고치는 사람'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 '잘 우는 사람' 등으로 단락이 나누어지는 것으로 보아, 책의 내용은 어른들의 정형화된 장래 희망에 대한 정형화된 답은 아닌 것 같다.

감동했다.

코로나에 갇힌 지금도 직업으로만 꿈을 이야기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작가의 시선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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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들을 돌이켜 볼 때면, 자주 하는 '가정법'을 다시 던지게 된다.


'만약, 어린 시절 째째에게 이런 시각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다면.'

'만약, 째째에게 이런 질문을 해 준 어른들이 있었다면.'


꿈을 향해 찾아 헤매느라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행적 지도가 조금은 단순해졌을까?

그랬으면 째째의 고통이 좀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이제는 안다. 삶에서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걸.

밥을 먹으면 똥이 되고, 똥은 거름이 되고, 거름은 상추와 배추, 나무 같은 뭇 생명을 키워낸다.


기브 앤 테이크, 주고받기.


이 법칙에서 지구 위 생명, 그 어떤 것도 벗어날 수 없다. 소나무도, 국화꽃도, 딱정벌레도, 소도, 사자도, 호랑이도, 하이에나도, 개도, 사람도, 바위도, 공기도.

긴긴 시간을 살고서야 '지식'으로만 알았던 이 사실을 가슴으로 품게 됐다.

하여 오늘도 가슴을 열고 나를 만든 것들에 마음을 보낸다.


“지구에 빛을 보내는 태양계의 중심 태양아, 안녕. 고마워.”

“숨을 쉴 수 있게 산소를 만들어준 우주의 물질아, 안녕.”

“입자와 파동을 가진 전자야, 안녕. 모두 모두 고마워.”


그런데,

가장 가까운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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