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지도>9
동물 사람으로 태어난 나, ‘운명’
어머니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나, ‘운명’
주어진 환경의 영향 속에 자란 나, ‘운명’
나, 이 모든 것들을 사실로 바라볼 수 있다면…… ‘자유!’
운명이라는 단어가 함축한 의미의 한정과 체념을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 현실은 생명에게 운명이라는 테두리를 주기 마련이니까요.
운명은 누군가에게는 행운을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행을 줍니다.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는 법이니, 대체로 자신의 운명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가 많겠네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시대적 가치관에 충실했던 아버지, 공장을 다니며 공부해야 했던 3년의 시간,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의 용광로 같은 감정들.
‘사람에게는 정말 정해진 운명이 있나?’
‘사람에게는 정해진 운명대로 살 수밖에 없나?’
그것이 궁금해 명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해 보니 명리학은 지구 위에 태어나 죽어간 사람들의 태어난 날짜와 삶을 총합해 지식을 얻는 통계학에 가까웠습니다. 점은 점쟁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운명처럼 접신한 신이 보여주는 내용을 말해주는 것에 가까웠고요. 모두 오차가 필연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도록 사주를 보고 점을 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행동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행위를 미신이라 여기니, ‘운명을 알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나름 좋은 핑계였습니다.
그런데요, 언제부터인가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진짜 제 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진짜 제 마음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내 자식은 앞으로 잘될까?’
‘작가로서 성공할까?’
‘이번에 낸 책은 잘될까?’
‘남편은 잘될까?’
그러니까, 진짜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내 마음은 ‘미래엔 얼마나 더 잘살까, 얼마나 내가 이루고픈 욕망은 이루어질까’였던 것입니다.
포장을 잘한다고 진실이 감춰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알았으면서도 그동안 반복해서 했던 행동은 습관으로 남아 끊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건 욕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습관을 끊어내는 일은 나와의 거리두기,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사실로 보는 마음의 힘에 달렸겠지요.
벚나무로 태어난 벚나무의 운명, 고양이로 태어난 고양이의 운명, 호랑이로 태어난 호랑이의 운명,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의 운명을 사실대로 바라보고 사는 일. 전체 속의 내 위치를 아는 일, 이 자리에서 휘둘리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일.
그것이 운명을 자유로 바꾸는 핵심일 듯합니다.
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