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지도>11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을 얻어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 자재할 것이다.
-임재록, 시중 중에서
이 경구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시원함이 생각나네요.
우리는 대체로 사표로 삼는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그것을 권장하기도 하고요. 한 생명은 태어나 독립하기까지 가까이는 부모, 넓게는 세상 전체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댈 수밖에 없는 밖의 환경은 한 개체의 개성과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될 터이고요.
그런데 이 모든 사표를 중지하라니요, 끊어내라니요, 죽이라니요!
그런데도 불편함보다 시원함을 느낀 건 왜일까요?
방송을 보면,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면,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의 말을 듣다 보면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트라우마’
영향력 안에 존재하는 자의 필연적 고통이겠습니다. 영향력 안에 자유롭지 못한 자의 마땅한 대가입니다.
저 또한 살아오면서 많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쌓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차별들, 가족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 부족해 저지른 행동이 불러온 죄책감.
안쓰러움과 별개로 해결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왜냐고요?”
괴로우니까요. 제가 괴롭고, 괴로운 저로 인해 가족이 괴롭고, 주변인도 괴롭히니까요. 괴로움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는 저 또한 편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끊임없이 선인들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사표로 삶아 실천하려 합니다.
그런데요…… 함정이 있습니다. 사표로 삼는다는 것은 사표가 되는 그를 닮기 위한 노력이니, 주체성은 축소됩니다. 자칫 숭배의 샛길로 빠집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한 시작은 지배로 자리 잡을 위험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정이 한 지점에서만 유용해야 한다는 거겠네요. 인류가 알아낸 고귀한 이념, 평등과 독립의 가치를 잊지 않는 것. 홀로 당당한 개체, 나만이 아니라, 개미도, 고양이도, 괭이나물도 모두 독립적이고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