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그대는 그대대로

<‘오늘’ 마음지도>13

by 이기담

나는 나대로

그대는 그대대로

질경이는 질경이대로

개미는 개미대로

모두가 얽힌 채로, 그대로


요즘 저는 세상에 ‘정 떼기’를 하고 있나 봅니다. 세상의 모습들이 열기구에 올라탄 것처럼 사실적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제각각 제 모양대로 존재하고, 제 성질대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평등함과 존귀함이 ‘사실’로 느껴지는 기쁨을 누리는 중입니다.


‘세상은 저렇게 제각각, 제 모양대로, 제 성질대로 저렇게 있구나.’

‘각각의 생명체들은 느끼는 한계나 삶의 형편과 상관없이 제 모양대로 제 성질대로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내가 인간이어서 느끼는 감정의 야단법석은 저들과 상관이 없구나.’


그동안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제 감정이 연막을 치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요. 수시 때때로 변덕 부리는 감정에, 내가 쌓아온 습관이 만들어낸 가치관에.


기억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해였습니다. 여름, 저는 갈팡질팡 갈지자 그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취해 집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는데,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제 앞에 있었습니다. 심어진 나무도, 풀도, 길도, 정원석도, 서 있는 아파트도, 저도.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외로움, 죽음 뭐 이런 거였습니다. 모두가 따로 존재해 더없이 선명한, 사실적인 풍경 속에 내가 사라지고, 내가 없어진 풍경이 상상되었고, 이윽고 나를 기억하는 이도 슬퍼하는 이도 없어질 세상이 사실적으로 느껴져 저는 슬펐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느낌과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듯싶습니다. 하지만 느끼는 감정의 핵심은 정반대 같네요. 그때는 외로움과 슬픔이었고 지금은 기쁨과 자유로움이니까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답을 생각해봅니다.


그건, 그때는 내가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의 사실적 풍광 배경에 존재하는 거대한 연결망들의 존재를 눈치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사진 : 2006년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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