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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담 Oct 05. 2023

슬픈 부고

명상 2048


얼마 전 남편은 슬픈 부고를 받았다. 보여준 부고에는 서른이 된 딸의 죽음을 알리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딸이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유능했는지, 얼마나 착했는지.... 아버지는 딸의 장기를 기증했고, 딸의 일부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은 듯했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나도 무너졌다. 


"왜 그렇게 됐대요?"


죽음의 원인은 알고 싶은 건 당연지사. 조문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말했다. 


"교통사고로 이야기하는데, 아마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뇌사상태로 9일인가, 중환자실에 있었대. 준비 기간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담담하더라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사람들 앞에 내보인 담담함과의 사이에서 그가 겪었을 아픔이 짐작되었다. 



며칠 뒤,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석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는 젊은 학우의 얼굴이 핼쓱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 친구가 말했다.


"실은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코로나시기에 시작됐는데,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약은 먹고 있어요."


왈칵, 걱정에 실려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감정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집에 돌아온 후,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염려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얼마전 들은 남편지인 딸의 소식에 더해 며칠 건너 들리는 같은 종류의 뉴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살아온 내 삶 군데군데 상흔처럼 남아있는 옹이의 흔적들 때문일지도. 너무 캄캄해서, 너무 힘들어서, 더는 길을 찾지 못해 가끔씩 떠올려보곤 했던 그 길. 


누군들 그런 적이 없었겠는가.

그날, 그 친구에게 했던 말은 이랬다. 


"드론을 띄워 전체를 본다면, 죽든 살든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하지만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잘 살고 싶어요.  가끔 하고 싶은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요.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은 세상을 잘 살아갈 에너지니까요."


하지만, 말한 이 말도 내내 마음에 걸린다. '좀 더 적극적인 말을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거라는데' 하고.


스스로의 선택 없이 주어진 삶이란 지난함의 연속이다.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미모의 가부와 관계없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든 희노애락의 파도에 휩쓸리며 살아간다. 


가끔 세상이 '참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세상의 본모습인 '평등'은 인간의 감정에서도 어김없이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고난 희노애락의 파고를 넘어선 각자(覺者)가 아닌 이상 누구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불행하고, 행복하고, 슬프고, 기쁠 테니. 우리가 원하는 위치에 오른 돈 많은 이, 명예 가진 이, 권력 누리는 이 또한 예외이지 않을 테니.


그런 면에서 평등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외부의 모든 것들의 다양성을 개인의 선호에 따라 불평등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


통계적으로, 과학적으로, 다른 분명한 차이를 들어 반박한다면...이 차이 또한 넘어설 수 있는 생명이 인간이라고. 사실적으로 드러난 불평등이나 부당함에 대해서는 고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면 되는 일이라고, 조심스레  대답하고 싶다. 


세상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지금, 절망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의 감정 또한 욕심이 배경이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대로를 바라보기, 즐기기, 살아가기. 버킷리스트에 담긴 꿈은 잠시 밀쳐두고.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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