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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자의 우주 Jun 22. 2022

인류는 그렇게 자살했다.

공학자의 엉뚱한 상상 1.

23세기 어느 날.

인류는 자멸했다.


최후의 생물학적 인류였던 A1257-B는 자신의 뇌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버튼을 눌렀다.

A1257-B의 혈액으로 뇌 전이액 420cc가 밀려 들어온다. 


뇌 전이액에 고농도로 포함된 42만 기의 나노로봇은 

지금부터 50시간에 걸쳐 마지막 인류의 생물학적 뇌를 서서히 디지털 신호로 바꿔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당 2%의 속도로 마지막 생물학적 인류의 뇌가 사라졌다.


인류의 완벽한 자멸, 어찌보면 자살이었다.

그렇게 인류는 멸종했다.

          



언젠가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인류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상상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정말로 전지전능해진다면 인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1단계의 목표는 노화와 죽음의 극복, 즉 불로불사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 개체에게는 우주의 종말과도 같기에..


불로불사체가 되기 위해서,

의학/생물학에서는 유전자 치료, 장기 재생 등의 연구를 할 것이고

윤리적 문제가 없이 합성된 신체에 뇌를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할 지도 모르겠다.


한편, 기계/전자공학에서는 인간의 일부를 조금씩 기계화해 나간다. 

처음에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계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기계화된 신체가 기존 인류의 신체보다 기능적으로 월등히 뛰어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멀쩡한 자신의 신체를 포기하고, 기계로 교체하려는 소수의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경악하고 비판하지만,

서서히 인류는 익숙해지고, 이윽고 문화가 된다.


더 편하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알아버렸는데 인류가 포기한 적은 없다.

결국에는 사용하게 된다.


세대의 교체를 통해, 시대의 윤리관이 서서히 바뀌어간다.

인체의 기계화에 심리적으로 익숙해 진다.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종착지는 같다.


22세기 즈음. 인류는 더 이상 자연사하지 않게 된다.




불로불사 기술을 얻은 인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자원의 부족이 그것이다.


인류는 이제 태어나기만 할 뿐, 죽지 않는다.

인구수 조절을 위해서 갖가지 노력을 해 보지만, 쉽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사용하는 고도의 기술이 개발되었으나,

인류의 소유욕이 훨씬 더 빨리 자라난다.


절대적인 자원량은 풍족하지만,

죽지않는 인간은 항상 과거의 자신보다 더 많이 갖기를 원했다.


한번 손 안에 들어온 자원은,

비록 그것이 필수재가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양보해야만 한다면

결핍으로 느껴졌다.


분쟁이 필연적으로 끊이지 않는다.

인류가 충분히 멍청하다면, 이 단계에서 전쟁에 의한 공멸을 택할지 모른다.





22세기 말, 한 줄기 희망이 드리운다.


인체의 마지막 난제였던, 뇌와 정신에 대한 모든 연구가 끝났다.

그리고 이를 디지털화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인류는 이제 자신의 모든 기억과 의지를 전자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하다.

반세기전, 신체를 기계화하려던 시도보다 저항은 더욱 거세다.


이 기술은 뇌를 전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만 디지털로 복사하면서, 본체를 죽이는 기술"

즉, 죽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윽고, 거부감이 적은 차세대 기술이 개발된다.


나노로봇을 주입하면, 1년에 걸쳐서 천천히 뇌가 전자회로로 바뀌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뇌가 전자회로로 전환되는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며 일상생활도 가능하기 때문에,

대상자는 뇌가 변화하고 있는지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드디어 첫번째 실험 대상자가 나온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그의 뇌는 100% 전자회로로 바뀌었다. 


그가 말한다. 

"나는 여전히 나다. 지난 1년 중 나의 의지가 불연속적이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는 이제 잠을 잘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머릿속에서 그가 만든 수백개의 가상 세상에서 다양한 삶을 동시에 살아간다.


모든 가상 세상에서는 

그의 욕심만큼의 자원을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세상안에서 "신"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앞다투어 전자 뇌로 자신을 바꾸어 간다.


원하는 만큼 모든 자원을 사용하며,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다.

심지어 수백개의 삶을 동시에 살 수 있다.

결정적으로 "죽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정신이 디지털화 되어 간다.




디지털 뇌로 전환된 사람들은, 어쩌면 이미 사람이 아닌 그들은

자신의 뇌를 마음껏 발전시킨다.


그 어떤 인간도 가지지 못했던, 지식과 연산능력을 갖는다.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복하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진다.

네트워크만 연결되어 있다면, 상상하는 곳이 곧 자신이 존재하는 곳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깨닫는다.

이미 기존에 집착했던 물리적인 신체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음을.


삶의 대부분을 신체가 아닌 상상속에서 살게 된 그들에게

몸이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불안 요소일 뿐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새로운 몸을 다시 제작해서 뇌를 장착할 수 있다.


결국 신체를 포기하고 서버 형태로만 남기기로 한다.

전자 서버로서 의지만이 존재하는 인간.

"디지털 영혼"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겠다.


인간의 최종 진화의 모습으로 그렇게 한명, 두명 전환된다.

어쩌면 동시에..





디지털 영혼에게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은 의미가 없다.

새로운 세상 안에서, 그들은 원하는 시간과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비로소 신체와 정신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완전 자유" 상태가 된다.

두 인격이 만나 완전히 하나가 되기도, 다시 분리되는 것도 가능하다.


결합과 분리가 일어나는 숫자가 많아지며,

모든 개체는 점점 동조화 되어간다.

더 이상의 결합과 분리가 의미가 없어질만큼.


그렇게 인류의 정신은 하나가 되고, 공명하는 하나의 의지가 되어간다.


약 1만년의 역사 끝에, 마침내 하나가 된 인류.

더 이상 다툼도, 갈등도 없는 상태.


그것은 천국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수천만년의 긴 세월이 흐르고,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마침내 찾은 푸른 행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지상에 내려왔을 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끝도없이 늘어선 긴 서버실이었다.


극한의 침묵속에서 

작은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뚜.뚜.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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