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깊게 잠든 와중에 기척이 느껴져 잠에서 깨어났다. 실눈을 뜨고 보니 우리 집 성질 더러운 고양이가 내 품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녀석을 쓰다듬었고, 녀석은 기분 좋은 듯 골골송을 불렀다. 그 행복한 소리를 한참이나 들으며 나는 바야흐로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고양이는 참 귀엽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나는 우리 집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서 잠에 드는데, 여름이면 녀석은 나와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누웠다. 안 그래도 더운 마당에 몸에 열이 많은 나와 붙어 자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바람이 불고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녀석은 나와 최대한 붙으려 했다. 녀석을 품 속에 안은 채 가만히 쓰다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이 되곤 했다. 세상 편안한 녀석을 떨쳐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항상 잠은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다.
그날은 독일로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녀석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출장을 피했지만 이따금씩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겼다. 그나마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줄인 것이 3박 5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었다. 내가 곧 떠날 것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이른 새벽부터 나에게 폭 안겼다. 나 없는 동안에도 잘 지낼는지 걱정이 됐다. 출장 기간 동안 친구가 우리 집에 머물며 녀석을 맡아주기로 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한창 독일에서 시차와 씨름하고 있는 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고양이가 내가 쓰다듬는 걸 거부해" 녀석이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한다는 거였다. 퍽 이상한 일이었다. 전에도 친구에게 녀석을 맡긴 적이 있었고, 그때는 친구가 쓰다듬는 걸 허락하는 것은 물론 꾹꾹이까지 해줬어서 내가 은근히 질투했었던 터였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아니면 냥춘기가 온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출장이 끝날 때까지 녀석은 친구에게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의문을 안고 서둘러 집에 들어서자 녀석은 현관에서부터 시끄럽게 울어대며 나를 맞았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불평이라도 하듯이. 나는 그런 녀석을 쓰다듬어줬다. 녀석은 기분 좋은 골골송을 불렀다. 비로소 집에 왔음을 느꼈고, 나는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