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 태국 월드컵 예선경기를 보았다. 요즘 뒤숭숭하던 대표팀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찝찝한 무승부였지만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축구니까.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들은 대다수가 익숙한 얼굴들이었으나 대표팀에서는 처음 보는 생소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주민규 선수였다. 축구 팬들이 제발 대표팀에 뽑아달라고 애원하던 K리그 득점왕이 드디어 대표팀에 승선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격포인트는 없었으나 아주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한국나이로 34살. 최고참 노장에 가까운 나이가 될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며 얼마나 이 순간을 꿈꿔왔을까.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다른 선수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쓰디쓴 희망들을 삼켜왔을까. 눈만 감으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겠지. 뛰는 내내 그의 간절함이 손에 잡힐 듯 보여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항상 최고의 길을 달려온 엘리트보다 뒤늦게나마 꽃을 피우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했다. 기나긴 무명 시절을 견디고 끝내 차트 역주행에 성공한 가수, 이름 없는 조역만 맡다 늦은 나이에나마 충무로의 별로 떠오른 중년 배우. 남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 옆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스스로를 갈고닦아온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과 공감하고 응원했다.
그러니 나도 그리하겠다. 비록 지금은 나에게 빛이 들진 않더라도 아랑곳 않고 나의 것을 만들어가겠다. 그리고 기원한다. 주민규 선수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줘 다음 월드컵에도 꼭 출전할 수 있기를, 그래서 본인이 그토록 꿈꾸던 그 무대에서 골을 넣고 감동적인 세리머니를 선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