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카카오톡에 친구 삭제 기능이 생겼다. 모두가 원했지만 끝끝내 추가해주지 않던 기능이 왜 이제야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시간을 잡고 앉아 오래된 연락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낯설어져 버린 프로필들을 삭제하면서 드는 느낌이 자못 서글펐다. 앞으로 너와는 더 이상 엮일 일 없고 엮이고 싶지도 않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서의 나 혼자 내리는 사형 선고랄까. 갑자기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하게 된 걸까? 분명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내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관계라는 건 이렇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무리 친한 사이었어도 이사를 가게 되면 연락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이사 간 곳의 번호를 잘못 적어주거나, 주소를 잘못 적어주거나 하는 작은 실수만으로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끊어내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졸업과 같은 이벤트는 더 심했다. 모두들 졸업하면 연락하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졸업 후 연락할 방법이라는 게 그렇게 마땅치만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별했다는 느낌이다. 너와 나는 연락할 일이 없는 사이야!라고 선언하고 친구 삭제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이별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그랬기에 지금보다 이별의 가치가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순도 100프로의 반가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와 다르다. 우연히 마주친 오래전 친구란 연락처는 있지만 연락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을 불가항력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마주친 친구와 겉으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 남게 되는 것이었다. 단 1분만 투자하면 이 친구와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다만 그 1분을 투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히 반가워 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 연락처를 정리하기 시작한 지 수 시간이 지나자 800명에 달하던 연락처는 17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내 인맥이라고 불러왔던 놈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남은 감정은 후련함보다 씁쓸함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