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던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푸바오가 워낙 귀여운 탓도 있겠지만 강철원 사육사와의 애정 넘치는 스토리가 널리 퍼진 이유도 클 것이다. 강바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강철원 사육사님께서 눈물을 보이실 때에는 T가 90프로 이상 나오는 나조차도 울컥할 정도였으니까.
그동안 받아온 애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푸바오는 6천 명이 넘는 인파들의 환송을 받으며 중국으로 떠났다. 꽤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다만 푸바오가 떠나면서 인터넷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고작 판다 한 마리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호들갑'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글에서는 여자친구가 연차 쓰고 푸바오 환송하러 가자고 했는데 남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해서 싸웠다는 글도 있었다. 푸바오가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도 아니고, 그저 동물원에 있는 여러 동물 중 하나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 글을 보니 입맛이 씁쓸했다.
그 커플은 왜 다투었을까? 푸바오에 대한 애정이 차이 나서? 동물을 좋아하는 정도가 달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한 명은 F고 한 명은 T라서? 글쎄, 내가 봤을 때는 사람들이 점점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취미, 여가, 친목, 휴식 등 각종 삶의 여유를 천천히 잃어가다 마침내 사랑에 대한 여유도 잃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 됐건 말이다. 그게 배우자가 됐건, 가족이 됐건, 애인이 됐건, 친구가 됐건, 반려동물이 됐건, 아이돌이 됐건, 배우가 됐건, 아니면 푸바오처럼 나와 동떨어진 동물원의 한 동물이 됐건, 기차와 철도 같은 무생물이 됐건, 심지어 애니메이션 속 2D 캐릭터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사랑할 권리가 있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권리 말이다.
이야기 속 여자분도 그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다. 아이돌 팬싸를 다니거나 철도 덕후가 되어 각 기차들의 스펙을 줄줄 외우는 대신 푸바오를 사랑하고 애정했을 뿐이다. 다만 남자는 현생에 치여 사느라 그런 사랑에 대한 여유는 잃어버리고 말았으리라. 집값 걱정, 직장 걱정, 결혼 걱정에 치여 아주 좁은 범위의 상대에게까지만 애정을 나눠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넓은 범위까지 애정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골목길을 가다 마주친 약간은 지저분한 길고양이도, 나에게만은 살아 움직이는 만화나 소설 속 캐릭터도, 문득 길가에 보이는 화사한 벚꽃나무도, 햇살이 따스한 봄날의 오후 공기까지도. 그게 권리이자, 의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