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2> 당신이 내민 손

1. 기억

by 말랑

따르릉 따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소파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낡은 그곳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누운 채로 손만 뻗어 핸드폰을 찾아 이리저리 테이블을 더듬거렸다. 알람을 끄고도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느리게 돌아가는 무성영화처럼 천천히 소파에 비스듬히 앉는가 싶더니, 힘겹게 일어서 벽에 붙은 스위치를 켰다.

낡은 형광등에서 뿜어내는 빛이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자, 10평 남짓한 사무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이 안 드는 사무실은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손이 닿지 않는 벽과 벽이 만나는 천정 모서리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보였다. 밖에 내어 놓아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만한 사무용 책상 4개가 ‘ㄴ’ 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18인치 구형 모니터와 널브러진 서류들이 보였다. 벽에 붙은 둥근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사람은 여자였다. 그녀는 복도 끝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뒤 머리를 감은 듯 수건으로 머리를 감아 올린 채, 소파에 앉아 화장품 샘플을 바르기 시작하였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서 박태영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김지영입니다. 네 알고 있죠. 시간 맞추어 갈께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이내 다시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하였다.

조그마한 탁상용 거울에 비친 얼굴은 평범한 30대였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에 살짝 올라간 눈꼬리, 작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화장을 마친 지영은, 옷걸이에 걸어둔 검은색 재킷과 바지를 입었다. 낡은 서류 가방에 책상 위 서류를 챙겨 넣고, 사무실을 나갔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노인복지시설이었다. 지영은 익숙한 듯 건물로 들어간 뒤 30여 분 만에 다시 나왔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종종걸음으로 마을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탄 뒤, 지영이 도착한 곳은 조용한 카페였다. 지영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지영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지영을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오늘 지영씨 이쁘게 사진 찍어줄 사람이야.”

소개받은 사람은 쑥스러운 듯 가볍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1년 만에 보는 것 같아요, 잘 지내셨죠.”

뛰어 온 듯 가쁜 숨을 쉬던 지영은 물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제가 뭐 대단한 일한다고, 기사까지 써주세요. 좋아서 하는데 무슨 상이니 인터뷰니 하는 거, 너무 부끄럽고 부담스러워요.”

지영은 쑥스러운 듯 주변을 살폈다. 이내 카메라 찍는 소리와 플래시가 반짝이자, 카페에 앉은 사람들이 조금씩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성 월간지 기자인 박기자는, 한때 메이저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였다. 몇 년전 사측의 부당한 보도 지시와 감시가 도를 넘어서자 다른 기자들과 함께 맞서 싸우다 해직되어 회사를 옮겼다. 박기자는 지영에게 이번 인터뷰의 취지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젊은 사회인권운동가 10인에 대한 특집기사이며, 소외된 사람들과 인권 사각지대의 현실을 다룰 것이라고 했다.

지영은 여성 월간지에서 그런 내용을 얼마나 깊게 다룰 수 있을런지, 그냥 가십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학교 선배인 박기자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해 승낙을 하였다.

박기자의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와 사진 몇 장이 카메라에 담아질 때쯤, 지영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18시간 동안 커피 3잔 이외 뱃속을 채운게 없음을 그때 깨달았다. 박기자는 동료에게 몇 마디 건네고, 지영을 데리고 근처 국밥집으로 갔다.

두 사람은 순대국밥을 시킨 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로 어색함을 털어내었다. 지영은 자신보다 15년 대학선배인 박기자가 여전히 조심스러운지 신중하게 말을 고르다보니, 말이 자주 끊겼다.

“선배님 작년에 과동문회에서 만나고 못 뵈었네요. 그때도 소주 한잔 하자며 약속하고 헤어졌는데….”

지영의 말에 박기자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다.

“너 아직도 술 마시면 우냐, 뭐가 그리 고민이 많은지, 불만도 많고 바로 잡아야 할 것도 많고….”

지영은 쑥스러운 듯, 국밥을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저으며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대한일보 인턴기자 시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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