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레기
몇십대 일이라는 경쟁을 뚫고, 인턴기자가 되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는 자부심에 들떠, 첫 출근하던 생기발랄하고 당찬 지영의 20대 모습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인턴기자로 첫 출근하는 날, 사회 온라인 이슈팀에 배치되었다. 보급품처럼 지급된 노트북 하나와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취재 나간 기자들로 비어 있는 부서 내 구석 자리에 앉아 앞으로 어떤 취재를 하게 될련지, 어떤 기사를 써야 할런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인턴, 반가워,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기사 찾아서 ‘우라까이’ 하면 돼, 내 전화번호이니깐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해.”
짧은 설명을 던지고 백팩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이틀 뒤 회식자리에서 지영은 ‘우라까이’ 말을 처음 던진 사람이 박기자이며, 사내 직속선임이자 대학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영은 우라까이 라는 말의 의미를 몰라 검색을 해 보았다. 다른 신문사의 기사 일부를 대충 바꾸거나 조합해, 새로운 자신의 기사처럼 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인턴기자이지만, 나름 작문시험과 면접을 통과해 합격했는데, 남의 기사나 훔치는 일을 당연하게 시키다니… 지영은 6개월 인턴생활을 위해, 휴학계까지 낸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처음에는 다른 기사를 보고 배우라는 의미에서, 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두 달을 견뎠다. 이것도 자신의 스펙이 되어 줄 거라며 다독이며 또 두 달을 견뎠다. 하루에 ‘우라까이’한 기사는 20개가 넘어갔다. 데스크에서 좀 더 자극적으로 기사 제목을 바꾸고, 높은 트래픽 수를 올린 기자에게,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하였다. 이런 것이 더 많은 트래픽과 광고수익을 위한 것이었다. 지영은 자신이 올린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에, 욕설과 ‘기레기’ 라는 글을 보면서 정신적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왜 자신이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라는 ‘기레기’라고 욕을 먹어야 하는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울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회식자리에서 지영은, 박기자에게 이게 언론인의 얼굴이고, 현실이냐며 대들었다. 술에 취해, 민낯의 현실에 취해, 지영은 울다 욕하고, 욕하고 술 마시기를 반복하다, 잠이 들었다. 지영은 인턴기간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인턴 4개월이 지날 때부터 부지런히 박기자에게 질문하고 자료를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소외되고 어두운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에 알리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주말에 혼자 취재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지영은 쓴 기사들을 박기자에게 보여 주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영은 지나간 인턴기자 생활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항상 싸움닭처럼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사수였던 박기자에게 공격적인 자세로 대들었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사과하고 싶었다. 박기자는 바닥을 보이는 지영의 국밥 그릇을 보며, 지난번에 약속한 소주 지금 사겠다며 보쌈과 소주를 시켰다.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는 듯, 지영은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잠시 전화를 하고 오겠다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박기자는 혼자 소주를 연거퍼 마시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지영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지영아, 그때 참 힘들었지, 나도 고민도 하고 저항도 해 보았지만, 거기까지였어. 내가 몇달을 뛰어 다니며 취재한 기사는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맞게 기사를 쓰는게 인정받고 살아남는 길이었어. 너에게 선배로서, 제대로 가르쳐줄 것도 사실 없었다. 아니 널 보고 있으면, 20년전 나를 보는 것 같아 힘들었어. 난 기자가 아니고, 그냥 월급쟁이로 살았어…”
지영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당황해, 소주잔만 만지작 거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지영은 작년 과동문회에서 박기자의 근황을 들었다. 지영이 인턴기자를 끝내고, 학교를 복학한 뒤 언론인의 꿈을 접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어내 버렸다. 박기자는 지영이 신문사를 나간 뒤, 새로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데스크에 대항하였다. 박기자는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선후배 기자들과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부조리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며 3년을 투쟁하다 결국 복직을 포기하고, 여성 월간지로 자리를 옮겼다. 여전히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는 동료기자들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혼자 도망쳤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테이블에 소주 빈병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불그스레한 박기자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지영은 4번째 소주를 시키며 박기자에게 선배님 이게 마지막이에요. 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박기자는 갑자기 지영에게 물었다. 너 나가기 전날 나에게 던져 놓고 간 기사 말인데….술에 취한 듯 말꼬리를 흐리더니, 너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 라며 지영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