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남
인턴기자로서 4번째 월급을 받은 날, 지영은 과민성대장증후군, 소화불량,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약을 모두 버렸다. 지영이 버린 약과 함께 언론인의 꿈도,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처음 써 본 사직서를 가방에 넣고 출근하다,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첫 사회생활이라 힘들 거라는 자식 걱정을 하는 엄마의 말에는, 인턴기자로 일 하게 된 딸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배어 나왔다. 지영은 사직서를 가방에서 꺼내지 못하였다.
퇴근길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동네를 배회하다, 시장골목 귀퉁이 국밥집으로 향했다. 차도 쪽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구경하는 게 보여 다가갔다.
왜소한 체구에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듯 엉거주춤 누워있었다. 그 남자를 향해 젊은 두 남자가, 욕설과 함께 발길질을 하였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모두 저 상황에 말려들까봐,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지영도 젊은 두 남자의 거친 욕설과 험악한 외모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였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안 되어 보였는지 지나가듯 말을 건넸다.
이제 그만하세요. 저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제야 옆에 서 있던 남자들이 뭐라고 한 마디씩 하였다. 하지만 젊은 두 남자가 씩씩거리며, 스윽 쳐다보자 모두 못 본체 고개를 돌렸다. 그때 사람들을 밀치며, 손에 빗자루를 든 할머니가 차도로 들어왔다. 빗자루로 젊은 두 남자에게 삿대질하듯, 흔들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당당한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할머니 옆으로 다가섰다. 한층 높아진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젊은 두 남자는 바닥에 침을 내뱉고는 자신들의 하얀색 외제 승용차로 돌아갔다. 이윽고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여러 번 누르고는, 바닥에 누운 그 남자 옆을 지나갔다.
힘겹게 일어선 남자는, 몸을 일으켜 할머니를 따라 시장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들을 쳐다보던 지영은 심장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단순한 연민과 다름을 설명할 수 없는 듯,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모여 있던 구경꾼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만하라고 용기 있게 말을 했던 아주머니는 인도 구석에 늘어놓은 좌판으로 가 앉았다.
지영은 슬며시 아주머니 앞으로 가, 좌판을 보았다. 시금치, 당근, 마늘을 조금씩 소쿠리에 담아 팔고 있었다. 지영은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지영은 옥수수를 가리키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아주머니는 검은색 비닐봉지에 옥수수 6개를 담으며, 지영에게 내밀었다. 지영은 아주머니에게 오천 원 지폐를 건네며 조금 전 차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물었다.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자신이 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 놓았다. 그 남자는 시장 골목 입구에 있는 연탄 고깃집에서, 연탄 불 피우는 일을 한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시장을 어슬렁 거리며 밥을 얻어먹었는데, 연탄 고깃집 할머니가 몇 번 밥을 챙겨 먹이자, 연탄재를 치우고 불을 피우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좀 전에 그 가게에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데리고 온, 어린 여자애가 공을 가지고 밖에서 놀다, 공이 굴러 차도로 떨어졌다. 공만 보고 쫓아가던 여자애가 차도를 들어가자, 그 남자가 재빨리 뛰어들었다. 달려오던 차가 급정거를 하게 되었고, 그 남자가 순간적으로 감싸 앉은 여자애는 놀라서, 울며 부모에게로 달려갔다. 차도에 남겨진 그 남자는 차에서 내린 두 사람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지만, 여자애 부모는 그 상황을 못 본체, 여자애를 데리고 시장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주머니는 그 남자는 벙어리라고, 노숙자라고 말하며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지영은 아주머니가 설명해 준 연탄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에게 못 도와주어,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저녁시간이 지나 텅 빈 가게 안에서, 지영은 국밥을 시켜 놓고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지영은 몇 숟가락 뜬 국밥을 남겨두고, 가게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에도 지영은 퇴근길에 시장골목으로 향했다. 그 남자의 사연이 무엇인지, 자신이 도울 일이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그 남자를 찾았다. 가능하다면 좋은 취재가 될 것 같았다.
주말 저녁에 찾은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혼자인 지영이 들어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 남자는 연탄불을 피우고 있었다. 며칠 전에 봤던 낡은 등산복에 찢어진 운동화를 구겨 신고, 연신 가게 안으로 연탄불을 나르고 있었다. 목청 높은 할머니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한마디도 하지 않는 모습에, 지영은 벙어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저 나이 든 노숙자인데, 취재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끌림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빗대어 보았지만,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고, 손님들도 하나 둘 빠져 나가자, 그 남자는 가게 옆 구석진 곳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 남자는 가게를 나와, 시장골목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지영은 조용히 따라갔다. 그 남자는 시장골목을 빠져 나와, 약수터가 있는 뒷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