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은 복남이다. 전 주민이 9명 뿐 인 무도에서 유일한 젊은 여자인 복남의 삶은 불의와 폭력에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매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그녀를 남편 만종은 상습적으로 구타하고 시동생 철종은 시도 때도 없이 겁탈한다. 시고모와 섬 노파들 역시 과거의 자신들 모습이었을 복남의 불행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딸에게 ‘그래도 아버지는 있어야’ 겠기에 무도에 남아 있는 복남은 남편과 시동생을 만종이나 철종 혹은 너라고 부르고 답장이 오지 않는 어린 시절 친구 해원에게 계속 편지를 쓴다. 해원이 서울에서 휴가차 무도를 방문했을 때 유일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도 복남 뿐이다. 그녀는 당하면서도 웃고 울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떠든다. 그녀는 ‘인간적’이란 용어에 대한 우리들의 통념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하지만 복남이 친근하게 느껴질수록 그녀는 무도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 된다. 그런 지옥 같은 환경에서 복남처럼 살기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남은 호감은 가나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반면 무도의 다른 인물들은 복남 보다 비인간적이긴 하나 공감은 더 간다. 해원이 시종일관 까칠한 모습으로 세상일을 방관하는 이유는 복남 같은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이다. 그녀 역시 불의와 폭력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고립된 개인이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딱딱한 표정을 쓰고 침묵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편에 서서 복남의 희생을 공모하는 노파들 역시 여성성을 거세하고 집단의 목소리를 내재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만종과 철종 또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들이다. 그들은 복남과 대비되어 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무도에서 현실성을 획득한다. 때로 흉물스러울 만큼 불편한 그들의 모습은 비인간적인 환경이 만든 자연스런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도라는 공간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 영화의 비극은 그러므로 모두가 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벌어진다. 무도든 서울이든 우리 삶의 공간은 냉혹하고 비정한 정글이 되어 버린 현실을 더 이상 은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며 약하고 순수한 것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 가장 인간적인 복남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른 인물들처럼 약삭빠르게 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삶과의 타협에 무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그것도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복남은 딸과 해원에 대한 희망마저 잃고 자신의 인간적 욕망 역시도 날 것 그대로 발가벗기게 되자 미친 듯이 감자를 캐던 낫으로 미친 듯이 무도 사람들을 베어버린다. 위악과 위선의 가면조차 쓸 수 없는 복남의 삶에는 해원의 원피스 같은 순수한 흰색 혹은 뚝뚝 떨어지는 핏물 같은 붉은색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소복 같은 원피스를 입고 피 같은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기어이 해원마저 죽이러 가는 복남의 모습은 원귀 영화의 캐릭터들과 오버랩 된다. 하지만 복남이 해원을 죽이려한 이유는 불친절한 세상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해원에게 투영되어 있는 자신의 인간적인 흔적들을 스스로 죽이기 위해서이다. 한 때 희망이고 추억이었으나 절망과 상처가 된 그래서 앞으로 한(恨)이 될 가장 아름다웠던 유년의 순간들을 죽이고 죽음을 위한 제의를 스스로 치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복남은 해원의 무릎을 베고 누워 두 동강난 어린 시절의 피리를 내민다. 그리고 해원의 삐걱거리는 피리소리에 맞춰 피 묻은 두 손으로 허공에서 연주하다 웃으며 눈을 감는다.
마치 한 바탕 굿과 같은 이 제의를 통해 죽임을 당하는 대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서 복남의 캐릭터는 완성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복남은 기존의 원귀 캐릭터들과 결별하고 이 영화는 단순한 여성복수극에서 한 발짝 나아간다. 복남의 복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약자'가 된 모든 '약자'의 복수이며 복남의 복수에 대한 우리들의 쾌감은 복남과 비슷한 현실을 살아가는 같은 '약자'로서의 연대 의식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인간적이란 말의 역설을 드러내고 그 의미를 강렬하게 극화하여 우리에게 인간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는 영화다. 복남의 복수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 우리들의 현실을 향한 잔혹하지만 숭고하고 무자비하지만 슬픈 핏빛 반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