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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정 Jun 17. 2021

‘나’에게로 가는 ‘우리’의 시간 ..
<늑대아이>

1. <늑대아이>는 인간 ‘하나’의 사랑 이야기다.       

하나가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늑대아이> 속 평범한 이 이야기에는 다만 특별한 지점이 존재한다. 하나가 사랑한 사람이 늑대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늑대인간은 인간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늑대인간이 충격적인 무엇인 듯 유난을 떨거나 무서운 일이라도 벌릴 위험한 존재인 것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겨울밤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 ‘늑대인간은 전설로만 알았는데.. 세상은 내가 모르는 일들로 가득 차 있구나’라고 반응할 뿐이다.     

                

하나는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와의 사랑을 익숙한 수순대로 진행한다. 그를 집으로 들이고, 그의 아이들을 임신하고 유키와 아메를 낳는다. 하나는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두 아이를 앞뒤로 들쳐 업고 비 오는 동네 거리를 찾아 헤매다 사람들이 죽은 늑대를 잡아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집에 돌아와 잠시 망연자실해 있던 하나는 그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사진을 바라본다. ‘아이들을 부탁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의 얼굴을 향해 하나는 “그래 나한테 맡겨 잘 키울게” 라며 울면서도 씩씩하게 대답한다.      

               

늑대인간과 가족이 되었을 때는 물론 늑대인간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가 갑자기 죽었을 때도 하나의 인생은 뒤집히거나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시간은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므로 <늑대아이>에서 평범한 사랑이야기가 특별한 이야기로 변신하는 지점은 평범한 인간인 하나가 특별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지점이다.       

              

하나(꽃)는 꽃처럼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처럼, 언제 어디서든 웃는 심지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계속 웃었던 인물이다. 가족 없이 홀로 장학금과 알바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하나는 학교에서 청강하는 그를 보고 먼저 말을 걸며 친해진다. 외로워 보이지만 슬퍼보이지는 않고 여러 보이지만 약해 보이지는 않는 하나는 지금껏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 비밀을 가진 사람을 자신의 인생에 받아들이고 그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을 가벼운 일상의 의례처럼 해치운다. 사랑하는데 늑대인간 따위 아무 문제 될 것 없는 하나에게 그와의 일상은 불안이나 두려움 보다 안정감과 행복을 준다.                     


아이들이 태어나도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혹시 늑대모습을 한 아이가 태어나면 의사가 놀랄까봐 집에서 자기들끼리 아이들을 낳고 ‘착한 애로 자라날까 머리 좋은 애로 자랄지도 어떤 어른이 될까 다 자랄 때까지 지켜 봐 주자’ 등의 대화를 평온한 얼굴로 나눈다. 늑대인간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 책 밖에 의존할 데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아플 때 소아과를 가야할지 동물병원을 가야할지 고민하면서도 하나는 그 시간들을 육아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평범한 시간들로 대한다. 하나는 자신의 인생에 던져진 비일상적인 일들을 일상적인 일들로 받아들이고 해결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하나가 가진 사랑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하나는 사랑을 함에 있어 장애물이 별로 없어 보인다. 늑대인간으로 변한 뒤 ‘놀랐어? 라고 묻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하나의 얼굴에는 놀람 외에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와 밤을 보내면서 ’무서워?“ 묻는 그에게 하나는 ”안 무서워 너 인걸“ 하고 대답한다. 늑대아이들 역시 평범한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엄마로서 무한한 사랑을 주는 하나는 그래서 늘 웃는다.                     


보통 사람들에게 사랑이 삐걱거리거나 중단될 이유는 하나에게 사랑을 더욱 굳건하게 지속할 이유가 된다. 장애물을 만나 서둘러 자신의 원래 세계로 귀순하는 대신 하나는 가볍게 날듯이 다음 단계로 도약한다.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사랑이 끝나는 지점, 인간끼리의 사랑 서사에서 긴 장애의 협곡으로 활약해온 지점들을 하나는 멀리뛰기 하듯 간단히 건너가 버린다.                     


하나의 사랑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사랑이야기를 평범함의 서사로 끌어들인다. 낯선 존재를 사랑하

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평범한 사랑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는, 특별한 사랑이야기다.                      


2. <늑대아이>는 ‘나’에게로 가는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능력은 하나의 삶의 태도,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 맺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사랑에 있어 대상의 경계가 없는 하나는 모든 생명 모든 존재에게 열려 있다.                     


하나는 사랑이, 생명을 존재 그대로 수긍하고 어여삐 여기는 신비한 에너지, 감정임을 보여주면서 애초에 사랑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인간은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인간은 사랑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을 소환한다.                    


그래서 하나의 사랑 1단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는 그를 ‘인간과 늑대 사이에 태어난 일본 늑대의 마지막 후예’ 보다는 다녀왔습니다 하고 신발 벗고 세수하고 손 씻을 수 있는 집, 책장을 만들 수 있는 집이 있길 바라는 ‘평범한, 외로운 존재’로 이해한다. 늑대인간에 대해 인간사회가 쌓아온 편견과 두려움에 휩싸이지도, 사랑으로 인해 감정적 과정이나 낭만적 해석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늑대가 딱히 싫진 않아’ 라며 늑대에 대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화내거나 떼쓸 때면 늑대로 변신하는 두 아이들이 수시로 어린 늑대가 되어 온 집안을 물어뜯으며 사고치는 모습 앞에서 하나는 신기하다는 듯 ‘역시 정말 별 수 없네’라고 말하며 웃을 뿐이다.                       


하나의 사랑 2단계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자기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나는 아이들이 그들답게 자랄 수 있도록 인간 아닌 생명이 사는데 어려움이 많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한다. 인간이 동물에게 밀려난 야생에 가까운 시골에서 하나는 폐가를 직접 수리하고 오로지 자연과 동물들 속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천진난만하게 늑대아이로 들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앞으로 늑대? 아니면 인간?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인간세계를 동경하는 유키에게는 늑대가 안 되는 주문 ‘선물 세 개 문어 세 마리’를 외우게 하고 늑대로서의 정체성에 더 끌리는 아메에게는 학교 대신 산으로 가서 늑대로 사는 법을 배울 자유를 허락한다. ‘인간과 늑대 중 어느 쪽으로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던’ 순간들을 함께 통과한 후 유키는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 학교 기숙사로 떠나고 아메는 늑대가 되어 산으로 떠난다. 유키와 아메가 ‘나’를 발견하는, ‘나’에게로 가는 시간을 함께 살아낸 하나는 ‘건강히 지내렴’ 담백한 인사를 하고 그들을 보낸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랑 3단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는 아이들이 떠난 후 홀로 시골집에 남아 12년의 세월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정말 잠깐이었다고 환하게 웃는다. 간간이 들려오는 늑대소리로 아메와 소통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하나의 얼굴은 이제 자신만의 집을 찾은 듯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늑대인간을 만나 유키와 아메를 낳고 키운 그 시간은 하나에게도 ‘나’에게로 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인간 하나가 사랑한 시간, 12년의 세월은 ‘나’에게로 가는 ‘우리’의 시간, ‘우리’로 완성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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