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의 <아모르>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그 가운데서도 황혼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음악가 출신의 조르주, 안느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부부다. 긴 세월동안 산전수전을 함께 겪으며 황혼에 도착한 그들의 사랑은, 사랑의 모든 결들이 새겨진 견고하고 성숙한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오래 살아온 안락한 집과 같고 서로에게 그들은 집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집은 없다. 우리 집만 있을 뿐. 영화의 도입부, 함께 음악회를 다녀 온 후 조르주는 행복한 표정으로 안느에게 말한다. ‘오늘밤 당신 참 이쁘다는 말 했던가?’ 그들의 사랑은 시드는 대신 완숙해진다.
그 다음날 안느가 뇌졸중에 걸린 걸 알게 되고 그녀는 빠르게 죽어간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사랑이 끝나가는 지점이 아니라 인생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인생이 끝날 때 그래서 인생이 사랑을 강압적으로 끝내려 할 때 시작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황혼의 사랑은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다.
불청객처럼 찾아든 마지막 사랑이 시작된 그들의 집은 어둠과 고요, 적막에 휩싸인다. 휠체어를 타고 안느가 퇴원한 후 일상의 의례들은 다시 시작된다. 그들은 밥 먹고 자고, 씻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안느의 마비된 다리를 운동시키고, 안느의 기저귀를 갈고, 안느에게 밥을 먹이고, 안느는 음식을 거부하며 입을 닫아건다. 일상은 소리없이 미세한 균열을 내고 그들은 ‘사랑해’ 라는 말보다 ‘미안해’라는 말을 더 자주 한다. 안느는 변해가고 안느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던 조르주는 초췌한 얼굴로 악몽을 꾼다. 하지만 조르주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성실하게 안느와의 일상을 치러 나간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방식은 안느가 죽음 앞에서, 망가져가는 육체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의 기쁨 때문에 아니라 사랑의 무게로 인해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표정은 쓸쓸함이다. 자신의 육체에서 행해지는 잔인한 쇠락의 길을 목도하는 안느를 지켜보는 조르주의 눈빛은 쓸쓸하다. 절망하며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안느를 무덤덤하게 지켜보는 조르주의 눈빛은 쓸쓸하다. 더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지 못할 때 그래서 서로 각자 다른 곳을 보며 사색에 잠길 때 그들의 어둡고 깊은 눈에 스치는 것은 쓸쓸함이다. 안느는 침대에만 누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조르주를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떠난다. 조르주는 안느가 남긴 빈자리에 홀로 남아 그들의 사랑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이 사랑 영화는 조르주의 영화다. 자신을 밀어내고 홀로 죽음을 준비하는 안느를 조르주는 말없이 바라본다. 그는 사랑이 주는 모욕 같은 그 시간들을 가을꽃 같이 깊은 눈으로 차분히 응시할 뿐이다. 조르주는 사랑을 지속해 나가고 있기에 울지 않는다. 그는 힘겨워하는 안느를 떠나보내고 안느의 마지막 옷을 고르고 안느를 꽃으로 장식한다. 함께 한 사랑을 홀로 끝내는 조르주의 담담한 둿 모습은 슬프기보다 쓸쓸하다.
<아모르>는 영화가 인물의 삶에 감정적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하네케의 영화답게, 사랑의 쓸쓸함을 차분히 냉정하게 응시한다. 영화는 조르주와 안느의 삶과 사랑이 우아하게 진열되어 있는 그들의 집과 일상을 건조하게 쫒아가면서 ‘사랑은 병들 때나 죽을 때나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랑의 정석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 행간을 질문들로 채운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아름다우면 무엇 때문인지 그리고 이토록 쓸쓸한 사랑을 우리는 왜 계속 하는지... <아모르>는 사랑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응시하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