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 여행기 2
알바니 해리 포터 집을 나와서 한국의 고궁처럼 생긴 뉴욕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알바니 해리 포터 이야기는 여기에서: https://brunch.co.kr/@92a09f503442417/107)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를 통과해서 걷기로 했다. 코로나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이 한적했다. 플라자 통로 벽에는 아주 재미난 예술품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동심을 일깨우는 듯한 그림. 저 하얀 동그라미에 얼굴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게 해 주면 좋겠다. 위로 향한 검은색 화살표 두 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림 설명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설명까지 읽을 여유가 없어서 패스했다. 저 그림을 만든 화가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경악할 것 같은 무지한 생각만 한 채로.
깔끔하고 모던스러운 조각(?) 품도 있었다. 회색과 파란색 계열의 색깔이 참 조화롭다. 그런데 이 정도는 예술 전공이 아닌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무지한 자가 용감하다.)
그리고 어떤 한자처럼 생긴 그림도 있었다. 꼭 어떤 한자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천 하나 사서 저렇게 잉크 자국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유명한 사람이 한 장난질 인가보다. 작품 근처에 너무 가까이 못 가도록 울타리를 처둔거 보니.
가볍고 촐랑대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작품 사진을 찍다가 아주 재미있게 생긴 돌을 발견했다. 이 돌들은 통로 가장자리에 보통 전시된 다른 작품들과 달리 통로의 한가운데에 떡 하니 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색깔과 모양이 서로 다른 돌 세 개가 줄지어 있었고, 가운데 돌은 가운데 큼직만 하게 구멍이 나 있었다.
"쌤! 쌤! 저 구멍 난 돌에 얼굴 들이밀어봐요. 내가 사진 찍어 줄게요."
하얀 동그라미에 얼굴을 들이밀 수 없었던 한을 여기서 풀게 되는구나 하며 난 너무 신났다. 돌 옆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라고 '반 강제적'으로 요구하며 룸메 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참을 다 찍고 보니 내가 하는 짓이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후다닥 발걸음을 박물관으로 옮겼다.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미국인 친구가 플라자에서 노구치 작품을 봤냐고 물어봤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나는 대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돌이야. 동그란 돌처럼 생긴 건데, 본거 기억 안 나?"
돌이라고? 여행하면서 온갖 찍은 내 휴대폰 사진에는 동그란 돌은 보이지 않았다. 뉴욕주 박물관에서 보석 돌은 많이 봤지만 친구는 보석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그제야 깨달았다. 룸메쌤 사진을 엄청 찍어주었던 그 돌이었음을.
"주 재정이 부족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전 세계 박물관에 대여해 주자고 주장하기도 해."
"대여하겠다는 박물관은 많고?"
"물론이지. 줄을 설 정도야."
다이아몬드 값어치를 하는 돌이 예술적 감각이 없는 내 눈에는 여전히 돌로 보인다. 저 돌을 보겠다고 입장료 내면서 박물관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예술과 나는 사이가 멀어도 한참 멀다.
엠파이어 플라자 통로에서 예술적 무지를 맘껏 뿌리면서 나는 다음 여행 목적지인 뉴욕주 박물관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