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에스테파노는 페루에서 미국으로 온 지 몇 달도 안된 남자아이다. 지난주에 난 에스테파노와 함께 영어로 숫자를 읽는 방법을 같이 공부했다. 영어로 4가 뭐냐는 질문에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가면 '포'라고 대답하던 아이였다. 그리고 영어를 쓸 때는 항상 다 대문자로만 썼다.
오늘 오후에 에스테파노와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생겼다. 타라 선생님은 에스테파노가 수학 과제를 해야 한다면서 스페인어로 된 수학 학습지를 건네주었다. 난 스페인어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타라 선생님은 영어 학습지를 나에게 주었다.
에스테파노는 스페인을 써가면서 수학 학습지를 풀어나갔다. 그의 스페인 글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름다운 필기체로 대문자로만 쓰던 영어와 천지차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스페인어도 영어과 비슷한 알파벳을 쓴다는 것. 에스테파노에게 네가 스페인어 쓰는 것처럼 영어도 그대로 써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못 알아듣는다. 결국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타라 선생님이 와서 에스테파노에게 알려준다. 그러고 나서 에스테파노는 대박에 영어를 스페인어를 쓸 때 썼던 필기체로 아름답게 영어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옆에 앉아있는 터키 소녀 니멧도 에스테파노의 손글씨에 감탄한다.
에스테파노의 스페인 문해력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에스테파노는 영어를 전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와 공부할 때 겨우 내가 묻는 질문에 단답형으로도 답할 뿐이다. 타라 선생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에스테파노가 나와 공부할 때는 영어를 말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에스테파노와 함께 영어를 말하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계획했다.
윔피 키드 다이어리 책인데 스페인어와 영어 버전 두 책이 있어서 우리는 함께 영어문장을 번갈아가면서 읽었다. 스페인어로 문장을 읽으라고 했다. 당당하고 더듬거림 하나 없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다. 하지만 영어로 읽을 때는 자신감이 일도 없다.
아이패드 번역기를 이용해서 '잘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읽어봐'라고 주문했다. 더듬거리는 것은 여전했지만 조금 더 빨라졌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고 에스테파노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지난주에는 영어 숫자 공부, 이번 주는 영어 문장 읽기 공부를 스파르타식으로 나와 한 에스테파노가 나를 싫어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 좋아?'라고 영어로 물어봤지만 무표정이다. 타라 선생님이 와서 스페인어로 대신 물어본다. 단번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에스테파노를 보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영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알고 있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 배움은 항상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어공부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