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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수업관찰 후 나자빠지다

by Sia

수업관찰 노트를 써야 하는 과제로 인해 오늘 수업관찰은 제대로 해야만 했다. 제대로 한다는 의미는 내가 궁금해하는 연구 질문을 답하기 위해 수업관찰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수업을 관찰했고 내 눈에 띄는 재미있는 것들만 봤지만 이제는 이렇게 술렁술렁 관찰할 수가 없게 되었다.


2교시 댄슨의 영어/사회 수업을 관찰하기로 했다. 댄슨은 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왔지만 영어가 서툴다. 부끄러움을 잘 타고 소심한 성격인 탓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술렁술렁 수업 관찰할 때 댄슨은 혼자서 수업을 시작하고 수업을 끝냈다. 책상은 조별로 만들어졌지만, 댄슨의 공부를 도와주는 학생을 본 적이 없고, 댄슨도 주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75분간 댄슨 바로 뒤에 서서 댄슨과 관련된 모든 상황을 적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는지 댄슨이 자꾸만 내 노트를 훔쳐본다. 댄슨의 선생님은 먼저 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학급 전체가 다 함께 읽는 책을 소리 내 낭독해주셨다. 댄슨은 손으로 책을 들고는 있지만 책 빼고 다른 곳에 온 신경을 쏟는다. 전자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학생을 가만히 지켜보는가 하면, 휴지 디스펜서를 사용하는 ENL 타라 선생님을 유심히 봤다. 댄슨은 갑작스러운 큰 소음이 나면 꼭 그 출처를 찾아 관찰했다. 그렇지 않은 때는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머리를 책상 위에 때리고 다리를 그네 타기하고 책상을 두 손으로 들었다 놨다 했다. 물론 그의 행동이 옆 짝꿍의 집중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읽고 있는 부분이 어딘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댄슨에게 물어봤다. 어깨를 으쓱 거리며 '몰라요'라고 답한다. 몇 분 후에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봤다. 이번에는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히 손가락으로 짚어 낸다. ADHD와 흡사한 행동을 보이는 댄슨이지만 옆에서 약간의 가이드만 해주면 분명히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다라는 것을 느꼈다.


책 읽기 다음 활동은 CNN 뉴스를 듣고 요약과 느낀 점을 적는 것이었다. 댄슨 짝꿍은 뉴스를 들으면서 열심히 요약하지만 댄슨은 뉴스 화면만 재미있게 본다. 뉴스가 끝나고 요약해야 할 시간이 되자 댄슨은 옆 짝꿍에게 도움을 청한다. 짝꿍은 '주 4일 근무'라고 알려주고 댄슨은 그렇게 받아 적는다. 댄슨의 CNN 뉴스 노트는 한국에서 내가 가르쳤던 중학생들의 영어 학습지와 흡사했다. 매우 간단하고 짧은 몇 개의 문장들.


댄슨의 영어 선생님은 독후 과제를 설명한 후 남은 수업 시간 동안은 사회수업 때 다 못 끝낸 여행책자를 만들라고 했다. 댄슨도 다른 친구들처럼 자신의 여행책자를 꺼낸다. 한참 동안 책자 표지에 뭔가를 그려 넣는다. 궁금해진 나는 그 그림이 뭐냐고 물어봤다. 댄슨 왈 " 몰라요" 정말 모른 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이 만든 것을 표현할 영어 단어가 없어서 몰라요라고 말한 것 같다. 책자에 그림도 그리고 간단한 설명도 써야 하는데 댄슨은 자꾸 나에게 질문한다. '사과 스펠링은 어떻게 써요?' '나무 스펠링은요?" '옷 스펠링은요?" 나는 댄슨이 물어볼 때마다 나의 수업관찰 노트에 그 단어 스펠링을 써주었다. 댄슨은 기본 영어회화는 되지만 기본 영어 쓰기가 되지 않는 케이스이다. 댄슨의 질문에 답을 바로바로 주기보다는 혼자서 단어의 스펠링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난 나중에 후회하게 되었다.


어느덧 75분이 지나고 나의 수업관찰도 끝났다. 집중력을 엄청 썼는지 관찰이 끝나고 너무나 피곤해졌다. 결국 집으로 일찍 돌아와야 했다.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침대 위에 뻗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도저히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림프절이 부었다. 겨우 75분 수업관찰로 이렇게 나자빠지는데 논문을 위해 연구자료 수집을 어떻게 하려는지... 일단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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