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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영어교사가 되기로 한 날

by Sia

잔인한 3월이 겨우 지났다. 4월은 덜 잔인할 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내가 맡은 담임반에서 큰 사고가 터졌다. 그리고 4월 2일 또 다른 사고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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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반에서 시달리면서 나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고자 했던 나의 시도가 나에겐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수업이나 교과 전문성 신장에 들일 에너지가 말라버렸다. 중등 영어 평가 전문가 아카데미에 뽑혀서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그 활동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첫 모임이 있는 날 탈퇴를 했다. 그리고 나의 도전도 멈추었다.


한국말과 다른 영어의 발음부터 시작해서 영어 기본 문장 구조를 가르치고 영어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해도 대략적인 의미 파악이 가능할 수 있는 영어 문장 구조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영어교과서로 수업하는 것에 익숙하여 교과서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한 눈치였다. 물론 나도 불안했다. 아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교과서를 나가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다 포기하고 쉽게 영어교과서를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진도 계획 담당하시는 선생님께 물어보니 다시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바꿀 수는 있다고 한다. 담당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먼저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일찍 학교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조회하기 전에 새로운 진도 계획을 바로 보내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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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일찍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더 자다가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났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 내내 생각해 봤다. 이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게 이야기했는지. 그래서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솔직해 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왜 이 도전을 시작했고, 너희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기로.


부랴부랴 아침 조회를 마치고 1교시 수업을 위해 영어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먼저 다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나의 도전에 대해서 솔직해 지기로 다짐했다.


"선생님이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지 10년이 다 되어가요."

"와~ 정말요?" 몇 명 애들이 놀라서 눈이 똥그랗게 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뻤다.

"그래. 맞아. 선생님 젊어 보이지~?"

"네~ 에!"


"10년 동안 중학생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어. 영어교과서를 사용해서 영어를 배운 이 아이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영어 관련 직업을 갖게 될까?"

"0명이요!" 한 아이가 바로 소리친다.

"아니야. 그래도 한두 명은 나오겠지" 다른 아이가 말한다.


"너희들 대부분은 아마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직업을 가지게 될 거야.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영어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하는 방식이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거였어. 교과서를 다 외우면 영어 실력이 늘까?"

"아니요, 시험 보자마자 다 까먹어요."

"그래, 맞아. 그러면 그런 쓸데없는데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그래서 난 너희들이 외우는 영어가 아니라, 이해해서 실제적으로 너희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어. 책도 여러 권 많이 읽어보고 고민한 결과가 바로 이 학습지인 거야."

학기 초에 아이들이 배울 학습지를 한꺼번에 다 인쇄해서 책철로 철해 나눠준 학습지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선생님한테 쉬운 수업은 그냥 교과서 나가는 거야. 너희가 이해하든지 말든지, 교과서 듣기 문제 풀고, 말하기 활동하고, 읽기 교과서 지문 읽히고, 문법 짧게 다루고. 하지만, 너희 중에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 수업에만 의존하는 아이들이 있어. 학원에 다닌 친구들은 문법을 배워서 어느 정도 알 꺼야. 하지만,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야.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칠 때 학원에 다닌 학생을 기준으로 가르쳐야겠니, 아니면 다니지 않은 학생을 기준으로 가르쳐야겠니?"


"학원에 안 다닌 학생이요."

"그래 맞아. 학원에 다녀서 이미 공부한 친구들에게 선생님 수업이 매우 쉬울 거야. 하지만, 그 아이들도 몰랐던 부분들을 이번에 선생님이 가르칠 거야."


"영어는 문법이 아주 중요해. 동사를 찾고 명사를 찾는 방법을 알면 주어와 동사 그리고 목적어 찾는 것이 아주 쉬어. 그냥 무조건 외우는 문법이 아니야. 지금부터는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이 아주 많을 거야. 이 기본 내용을 너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니까. 사실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게 이번이 처음이야. 그래서 이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실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너희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바로 질문을 해주라는 거야. 내가 생각할 때는 쉬운 부분이지만, 너희에게는 어려운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럴 때 너희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난 알 수가 없는 거야. 그렇겠지?"


몇 명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선생님의 강의가 다 끝나고 나면 너희가 영어 문장을 직접 읽으면서 동사를 찾고, 명사를 찾으면서 문장의 핵심이 되는 주어, 동사, 목적어를 찾는 연습을 아주 아주 많이 할 거야. 선생님 설명 한 번으로 이해가 안 되면, 구글 클래스룸에 영상을 다 올려줄 테니까 그 영상을 반복해서 이해할 때까지 봐. 반복해서 봤는데도 이해가 안 되면 선생님한테 질문을 꼭 하고. 1학기는 이렇게 공부하고 2학기 때 영어 교과서를 나가면 영어가 조금 더 쉬워질 꺼야.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거야."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한국말과 달리 조사가 없는 영어는 단어의 순서가 고정되어 있다는 수업이었다. 수업 5분을 남겨두고 아이들에게 종이를 한 장 씩 주면서 오늘 수업시간에 새로 배운 내용, 아니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수업시간에 느낀 점을 한 문장씩만 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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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중 열심히 필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답변도 아주 잘했던 한 여학생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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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정말~~? 선생님 진짜 감동이야~~ 정말 고마워! " 천만개 하트를 아이에게 날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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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초에 본인은 영어를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던 한 남학생의 소감이다. 결론인 동사를 맨 나중에 말하는 한국어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한 것인데, 약간 틀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의 마지막 문장이 날 감동시켰다.


"나도 영어 가능하겠지?"


물론 이것만 안다고 가능하지는 않다. 앞으로 나와 같이 배울 내용도 열심히 이해하고 배워야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에 난 뛸 듯이 기뻤다. 아이의 틀린 설명이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매 수업마다 아이들에게 영작을 시킨다.

"문법 다 틀려도 좋아. 너희의 생각을 너희 나름대로 영어로 써봐."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정작 영어 단어나 문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한국말로도 생각해 내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본인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외우게 하고, 문장 외우게 하고, 현재 완료와 수동태에 대한 이해 할 수 없는 설명을 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나도 영어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되면 좋겠다. 솔직한 영어교사가 된다면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수업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솔직해 지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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