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학교에서 2주간 거의 매일 (하루 40분) 영어문법을 가르쳤다.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내 머릿속에 자꾸만 커져가는 의문은 이것이다. "미국인에게 영문법이 꼭 필요하나?"
학생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그렇고 그들에게 영문법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수학공식과 같은 거였다. 어느 날은 문장의 주어-동사-목적어 찾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학교의 Reading Teacher가 들어와서 아이들과 함께 문장의 구조를 찾는 연습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서 리딩교사 왈,
" 와우 정말 어렵네요. 나도 모르겠어요. 무슨 수학공식 같아요."
미국인은 문장을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데 영문법의 지식을 알 필요가 없다. 이미 자동적으로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자꾸 마주 대하면서 정말 미국인에게 영문법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문법의 지식이 없는 미국인들은 기본적인 문법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흔하다. 비문법적인 표현에 익숙한 그들은 그런 표현이 비문인지도 모른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많은 미국인들도 문장의 주어와 동사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어교육을 오래 받은 한국인들은 문장의 주어와 동사는 보통 미국인보다 훨씬 더 잘 찾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영어로 말하거나 쓰는 것을 잘 못한다. 하지만 영어공부를 웬만히 한 한국인들은 아마 보통 미국인들보다 영어를 더 잘 읽을 것이다. 영어 글을 읽을 때는 문장의 주어와 동사를 제대로 찾아야 문장의 온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영어 글을 읽을 때 문법식으로 읽지 않고 의미적으로 읽는다.
(1) She has beautiful hands.
(2) She hands him a pen.
위 두 문장을 제시하면서 영어는 단어가 문장에 들어가 있는 위치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1) 번 hands는 목적어 자리에 있어서 명사이고 (2) 번 hands는 동사자리에 있어서 동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한 남학생 왈, "(2) 번은 말이 안 되는 문장이에요." 이 학생은 hands는 '손'이라는 의미로만 생각했다. hand가 '건네주다'라는 동사적인 의미도 있다는 것을 학생은 나의 수업시간에 처음 알았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년간 공부한 학생이다.
미국인들이 영어 글을 읽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과정이 참 궁금하다. 나의 머릿속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나는 영어문장을 읽을 때 주어와 동사부터 찾는다. 물론 그렇다고 한 문장을 읽을 때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읽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직독직해를 하면서 문장의 주어와 동사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읽는다고 하자.
The element thus introduced has spread and is spreading throughout the Soudan, as water soaks into a dry sponge. (The River War -Winston Churchill)
The element (그 요소는)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이것이 이 문장의 주어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문장의 주어는 명사밖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thus introduced has (그렇게 알려진 (그 요소는) ~한 상태이다)
여기서 thus는 부사이다. 부사임을 바로 알 수 있는 이유는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나와야 하는데, 동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부사는 문장의 아무 자리에나 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부사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사는 형용사, 동사, 부사를 꾸며준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introduced는 형용사이다. ed가 붙여서 과거 동사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영어는 재활용을 많이 하는 언어라서 과거분사를 형용사로 사용한다. 결국 동사는 has이다.
The element thus introduced has (그렇게 알려진 그 요소는 ~한 상태이다)
spread (퍼진 상태)
동사 has가 가지고 나오는 단어는 spread이다. 보통은 has + pp (과거분사)로 현재완료 형태로 한국인들이 문법시간에 많이 외운 것이다. 하지만, has를 '무엇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뒤에 나오는 과거분사 (spread)를 '이미 어떤 상황이 된'이라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has spread는 '무언가가 퍼진 상태를 가지고 있다'로 해석이 된다.
The element thus introduced has spread
(그렇게 알려진 그 요소는 퍼진 상태이다)
and is spreading (그리고 퍼지고 있다)
and로 쓰여서 또 다른 문장을 연결시키고 있다. 즉 주어 the element는 똑같기 때문에 생략하고 바로 동사 is부터 나오고 있다.
throughout the Soudan, (수단 전역에)
전치사 throughout + 명사는 문장에서 주어, 동사, 목적어가 절대 될 수 없다. [전치사 +명사]는 부사이다. 부사는 문장에서 [왜, 어떻게, 언제, 어디서]에 해당하는 것은 다 부사이다. [누가, 했나, 무엇을]은 문장의 주어, 동사, 목적어에 해당된다.
, as water soaks (물이 (스스로) 스며드는 것 처럼)
as는 소리친다. '내 뒤에 작은 뼈대 문장 나온다' 즉, 문장의 큰 뼈대 (주어-동사)는 이미 앞에서 나왔고 이제는 작은 뼈대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주어-동사를 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주어는 water 동사는 soaks가 된다.
into a dry sponge. (마른 스폰지속으로)
물이 '어떻게' 스며드는지 [전치사+명사]가 설명해 주고 있다.
영어 문장의 주어-동사-목적어는 나무의 뿌리, 몸통, 큰 가지에 해당된다. 나머지 부사, 전치사들은 잔가지와 나뭇잎이다. 나무의 기본은 나뭇잎과 잔가지 때문에 가려서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무의 뿌리, 몸통, 큰 가지 (주어-동사-목적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인들은 나무의 뿌리, 몸통, 큰 가지를 대충 하나로 알아보고 잔가지와 나뭇잎으로 대략 문장의 의미를 때려 맞춘다. 한국인들은 모르는 단어도 많기 때문에 잔가지와 나뭇잎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뿐이다. 그래서 나무의 뿌리, 몸통, 큰 가지를 먼저 파악해야 나뭇잎과 잔가지에 찔려 피가 나오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미국인보다 영문법을 더 잘 알지만 그들만큼 영어로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거나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난 그들보다는 영어를 더 잘 읽는다고 확신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작업은 읽는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영문법이 나의 영어말을 하거나 영어 글을 쓸 때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아직은 그 방향이 어떤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문법이 토대라는 것은 확신한다. 미국인들에게는 토대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토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