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ENL 영어 캠프 봉사기
"중국어 할 줄 알아요?"
초 집중하던 색칠공부를 하다가 잠시 멈추고 땡그란 두 눈을 크게 뜨며 제이슨이 나에게 질문한다. 제이슨은 이번 캠프 초등학교 1학년 부에서 유일한 아시안계 학생이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제이슨은 마음속으로 천 번 암기했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계속 이어간다.
"저는 아시안계 사람이고 중국사람이에요. 제가 하는 중국말은 보통 중국말과는 달라요. 중국어 할 줄 알아요?"
나보고 중국사람이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사람이다. 지난 학기 봉사활동 다녔던 미국 중학교에도 교실에 있는 모든 아시안계 학생들은 전부 중국인이었다.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아시안계가 한 명도 없다. 대부분 백인들이고 한 두 명의 흑인 선생님들이 전부다.
올해 ENL 캠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영어 캠프)에도 교사 중에 제이슨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제이슨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난 중국말할 줄 모르고 남한에서 온 한국 사람이며 한국말을 한다고 대답해 준다.
평생을 중학생만 가르쳐온 나에게 초등학생 1학년은 매우 생소한 경험이다. 색칠공부가 캠프의 절반을 차지한다. 본인의 사물함 문에 달아 놓을 자기 초상화를 그리면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자기 눈 색깔이 뭐냐고, 머리 색깔은 뭐냐고 묻고 답한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와서 한 교실에 모인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외모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제이슨은 피치-복숭아 색깔 크레용이 없다고 한참을 서성거리며 피치를 찾아 헤맨다. 피치와 그나마 비슷한 색깔은 핑크색이 있었지만, 핑크는 피치가 아니다. 노란색은 보통 아시안계 사람들의 피부색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색이지만, 제이슨도 안다. 자기 피부색은 노란색이 아님을.
화장실 가고 싶다는 한 여자아이와 함께 화장실 가고, 여기저기 늘어진 마커와 크레용을 제 자리에 두고 떨어진 쓰레기 등을 줍다 보니 벌써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 처음 만난 Miss D. 에게 중학생들만 가르쳐봐서 작은 아이들은 처음이라고 했더니, "A lot of love, a lot of love"라고 강조한다. 사랑만 있으면 다 된단다.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은 사랑의 감정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물론 베이비 시터가 된 느낌을 버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