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알바니
이상한 눈폭풍이 지나갔다. 눈이 45cm 넘게 내렸지만 내린 눈의 절반 이상이 물로 녹아버렸다. 눈폭풍이 오기 전날부터 사람들이 난리 더니 결국 학교도 문을 닫았다.
온 세상은 새하얀 슬러쉬로 뒤덮였다. 눈 슬러쉬는 내 발목을 조금 넘을 만큼만 쌓였다. 호들갑이었다. 하지만 벌몬트주에 사는 교수님 집은 자꾸 정전이 돼서 약속된 줌미팅을 이틀이나 연기해야 했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게 전기가 나가는 것이었다.
슬러쉬 눈은 이제 지겹다. 하얀색도 지겹다. 빨리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바람은 왜 또 이렇게 강하게 부는 건지 애꿎은 바람만 미워진다.
바람의 등쌀을 못 이기고 큰 나무의 우람한 가지들이 처참하게 나무 몸통에서 떨어져 죽어간다. 이까지 눈에 이까지 바람에 저렇게까지 나가떨어지는 나무가 이해가 안 된다. 얼마나 나약한 나무였으면 그럴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이 눈 폭풍에 죽은 나뭇가지들은 연약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나무에서 가장 강인한 부위였다.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부위였다. 그래서 조금 센 바람에 쉽게 나동그라졌다. 너무나도 강하게 움직이지 않으려는 고집이 죽음을 자초했다.
땅을 보고 걷는 나의 '못된 습관'이 아니었다면 놓칠 뻔했다. 이 고드름 나무. 못된 습관도 연약함도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오늘 하루 제대로 끝낸 일 하나 없어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이 고드름 나무가 나쁜 기운을 순식간에 빼앗아 갔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조각을 보고 있으니 나 자신도 덩달아 아름다워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내일도, 내일모레도 제대로 못해도 괜찮다. 저 고드름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 우리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