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 담궈봤어? 미국 오이지는 처음이야!

by Sia

오이지 담궈봤어? 미국 오이지는 처음이야!

배추김치는 도저히 도전 못하겠다.

"그랑께 너 배울 수 있었을 때 나한테 배웠어야제."

엄마 김치가 그립다는 말에

엄마는 속상한지 괜히 나만 혼낸다.


반찬의 최고봉 로열 배추김치는 못 담그더라도 그 아래 조망이 들은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자주 가는 한국마트 오이지무침은 내 입맛에 너무 짜다.

"한번 만들어보자"


개인주의를 밑바탕으로 세워진 나라답게 미국 오이도 매우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다. 미국 마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오이를 판다. 하지만 한국 백오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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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온에 두고 파는 오이는 하나에 78센트. 그런데 딱 봐도 맛없게 생겼다. 그래서 그냥 패스. 냉장고에 두고 파는 오이가 더 많다. 엄청 기다랗게 생겼는데 비닐 랩으로 일일이 싸였다. 뭔가 더 고급스러워 보이긴 하는데 너무 길어서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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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당 막하게 생긴 오이를 비닐봉지에 넣어서 파는 게 3가지 종류나 된다. 이것들 중에 뭐가 오이지에 가장 적합할까 고민하다 결국은 유기농 미니 오이와 샐러드 오이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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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오이가 샐러드 오이고 좀 더 날씬하게 빠진 오이가 유기농 미니 오이다. 더 맛있게 담가지는 오이지를 나중엔 더 많이 사겠다는 계획으로 진행된 실험!


개수만 세면 총 16개이나 작은 오이인 관계로 한국 백오이 10개에 해당한다고 나름 생각했다.


굵은소금 1컵이 필요하단다. 이런... 집에 굵은소금이 없다. 며칠 전 한국으로 귀국한 홍쌤이 주고 간 히말라야 핑크 소금이 굵다는 것이 생각났다. 얼른 꺼내서 확 부었는데 에고, 컵 절반도 안 찬다. 결국, 프레쯜에 뿌려먹는 굵은소금 챙겨둔 것도 다 부어 넣었다. 하지만 한 컵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마지막으로 잘디잔 잔 소금으로 컵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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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았다. 쌀 계량 한 컵이 미국 계량 1컵이랑 똑같다는 것을! 똑같이 '컵'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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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식초 1컵, 꿀 한 컵 반을 넣어줬다. 원래 내가 따라한 레시피는 물엿 한 컵 반, 식초 한 컵 반이라고 했는데, 너무 시큼한 식초 맛은 싫다. 그래서 고집 세서 내 맘대로 사는 일인인지라 식초는 한 컵만 넣었다. 물엿은 집에 없으니 마트에 가서 바로 사온 꿀을 대신 넣었다. 물엿보다 꿀이 더 좋은 거니 맛도 좋으려나?


그런데 소주 반컵도 넣으란다. 미국 땅에서 소주를 어떻게 구하지? 마트에서는 알코올을 팔지 않는다. (하지만 맥주는 알코올이 아니라 '음식'이므로 팔 수 있다.) 알코올음료를 사려면 리쿼스토어에 가야 한다. 운전 못하는 나이에 이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그냥 소주는 안타깝지만 패스!


이젠 이 혼합물을 잘 저어준다. 그런데 아무리 저어도 히말라야 핑크 소금이 녹질 않네... 그래서 그냥 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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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퍼락에 오이를 종류대로 넣어두었다. 이 두 곳에 혼합물을 비슷한 양으로 적당히 부어주었다. 물론 아직 녹지 않은 핑크소금도 같은 양으로 분리되어 담기게 최대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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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일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마다 지퍼백을 앞뒤로 뒤집어줘야 하는 게 참 성가시다. 오이를 잘라서 병에 넣어두고 정말 잠기게 하면 이런 성가신 작업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머리 좋은 요리사분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 하며 그냥 몸이 좀 고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5일 간 오이지로 숙성되는 과정을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면 하루 만에 오이가 노오랗게 변하는데 내 오이는 노오랗기는 커녕 점점더 까맣게 변해가고 있어서 걱정이 슬금슬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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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한 두개가 노랗게 변해 있는 날이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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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딸막한 샐러드 오이가 늘씬한 오이보다 더 잘된것 같다.

동굴속에서 마늘만 먹고 드디어 사람이 되어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곰의 마음으로 오이를 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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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땅딸막한 샐러드 오이가 훨씬 오독오독하다. 늘씬한 오이에는 소금이 더 많이 들어갔는지 훨씬 짜다. 짠건 질색인지라 썬 오이를 물에 넣어두어 짠기를 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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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정도를 기다리면서 필요한 양념을 준비한다.

자꾸 새싹을 틔우려는 마늘 두 조각, 일주일 전에 사서 심어 둔 파 하나. 파는 벌써 땅에 뿌리가 단단히 박혔다. 파를 냉장고에 두면 금방 시들고 썩어서 한때는 컵에 물을 담고 파를 담가두었다. 하지만 뭔가 시들시들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예 땅에 묻었다. 역시 사람이고 식물이고 흙이 중요하나 보다. 물만 먹고 자라는 파 보다 흙과 부비며 산 파가 훨씬 더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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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오이는 물을 잘 빼야 한다. 그래야 오독오독한 맛을 더 잘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면보가 없는 관계로 키친 페이퍼로 조금씩 넣고 꽉 짜준다. 매실청 대신 꿀을 넣고 고추가루 대신 비빔 고추장을 넣었다. 하지만 비빔 고추장을 넣은게 실수 였다. 고추가루가 없어서 어쩔수 없긴했지만 비빔 고추장이 들어가면서 고생하며 물 뺐던게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깨도 있으면 넣으면 좋았을텐데 깨가 없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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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거 하나만 놓고 밥을 먹어도 손색없을만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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