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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ul 15. 2023

미국에서 한국사람 알아보는 방법

미국 뉴욕주 알바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지하 푸드 코트.

영어캠프 봉사활동을 마치고 땡볕에 한 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하해 졌다. 집에 가면 배고파서 밥 먹고, 밥 먹고 나면 잠이 와서 잠을 잘 것이 뻔하므로 차라리 집에서 더 먼 곳으로 떠난다.


마침 캠프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30분을 시원한 버스 안에서 열을 시키자 버스는 내가 내릴 정류장에 멈춘다. 뜨겁고 푹 찌는 열기와 싸울 것을 각오하며 내린 나를 무색하게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린다.


회색구름 덩어리가 여기저기 떠다닌다. 야외에서 한참 흥이 나기 시작한 파머스 마켓을 여기저기 한눈에 쭉 스캔하니 다시 더워지기 시작한다. 배도 고프다.


한국사람만 먹을줄 안다고 생각한 마늘 쫑도 팔고 있다. 한 봉지에 3달러. 조금 비싸지만 한국이 그리워 덜컥 산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지하로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 푸드코트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생각하니 신이 절로 난다. 지난번에 먹었던 베트남 쌀국수 말고 오늘은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부리토, 초밥, 샌드위치, 수프, 다양하다. 하지만 역시 쌀국수만큼 날 잡아 당기지는 못한다.

지난번에 먹었던 쌀국수와 똑같은 것을 하나 사고 근처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작은 거 중간 거 큰 거 중에 뭘 먹을까. 대형 텀블러 크기의 아이스 라테를 맛있게 먹고 있는 한 여자를 지나치고 온 터라 나도  대용량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인지라 사람들이 많다. 맥도널드는 사람들이 줄 서서 주문하는 유일한 음식점. 기다리다 지치니 대용량 아이스라테를 먹는 게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는다. 결국 제일 작은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하나 주문.


한적한 코너에 자리 잡고 쌀국수에 야채를 넣고 뜨거운 국물을 넣는다. 맛있게 한 입 먹는데 한국말이 저 반대편에서 들린다.

“역시 쌀국수는 언제 먹어도 제맛이야. 겨울에 먹어도 맛있잖아.”


두 명의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반대편 테이블에서 나와 똑같은 쌀국수를 먹고 있다. 한 여름 에어컨 바람에 땀 흘리며 먹으면서 나도 백 프로 공감한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분들이라 즐거워서 ’ 가서 인사나 해볼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 셔츠 입은 아저씨가 등장했다.

“여기 월남쌈! 맛있게 드셔요. ”


아~~ 나도 사서 먹고 싶었던 월남쌈. 혼자라서 양이 너무 많아 못 사 먹었는데....


결국 난 혼자서 쌀국수를 다 먹었다. 아주머니들 일행도 다 먹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잠이 오고 피곤하지만 반드시 이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리라 다짐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다 읽어나가는데 어디선가 또 다른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 오른편에서 네 명의 가족이 내가 사 먹었던 똑같은 쌀국수를 먹고 있다. 방학이라 미국에 가족 여행을 온 듯하다. 중학생인듯한 어린 두 딸을 챙기며 먹는 엄마를 보며 한국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도 다가가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중국사람들은 외국에서 같은 중국사람을 만나면 서로 잘 도와주지만 한국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가서 안녕하세요라고 한마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철저한 내성주의 성격 탓인지 뿌리 깊이 박힌 한국인 정신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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