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귀신 달린 엄마 생각

한국에서 막 결혼하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커플이 있었다. 미국에서 이들의 주식은 다름 아닌 컵 라면이었다. 이 커플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말을 잇지 못하시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미국 가서 컵 라면은 절대 먹지 마세요."

물론 그분의 당부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지만 컵 라면은 가끔씩 먹고 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먹어줘야 컵 라면이 당기는 강한 그 맛을 조금이나마 무뎌지게 할 수 있다.

직구로 미국에서 파는 거의 모든 것을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분은 이 음식만큼은 미국 가서 꼭 먹어봐야 한다며 비밀스레 말씀해 주셨다.

"이건 정말 맛있어요. 질리지도 않죠. 미국 가면 반드시 꼭 먹어보세요."

한국에서도 흔한 그것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할까 반신반의했다. 미국에서 제철에 나고 지역 농장에서 길러 파는 이것을 먹을 때마다 그분의 말이 참이었음을 연신 깨닫게 된다.  

게이드 팜은 역사가 깊은 농장이다. 1878년에 세워져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가게는 농장을 운영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각종 야채, 과일, 꽃과 식물등을 직영으로 판매한다. 미국 뉴욕주의 여행책자에도 나오는 유명한 가게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로열티 멤버로 등록하고 자주 애용하면서 깨닫게 된다. 여행책자에 충분히 들어가도 남을만한 가게로 인정.

이곳에서는 농장에 직접 기른 수박과 옥수수를 판다. 노란 수박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슬프게도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온 수박만 팔고 있다. 7월 말이나 8월 초가 되어야 노란 수박을 살 수 있다니 인내심으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 노란 수박을 기다릴 동안 스위트 콘은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다.

작년에는 한 개당 1달러도 안되게 팔았던 것 같은데, 올해 인플레이션이 옥수수 값에도 영향을 미쳤나 보다. 월마트나 일반 가게를 가면 거의 일 년 내내 스위트 콘을 판다. 하지만 그런 옥수수는 스위트하지도 않고 싱싱하지도 않다. 반드시 제철에 나고 로컬에서 길러서 파는 옥수수를 사서 먹어야 한다.

가장 튼실하게 생긴 6개를 골라서 사 왔다. 냉장고에 놔두면 신선도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지만 오래 놔두면 빠르게 말라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므로 가능하면 신속하게 해치우는 것이 좋다. 한 번에 한 개만 먹으면 약간 서운하므로 2개를 먹는 것이 적당하다.

레시피는 정말 간단하다. 끓는 물에 딱 3분. 오일이나 소금 같은 것을 넣는 레시피도 있지만 나는 가장 깔끔하게 먹는 것이 스위트 콘의 제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야들야들 오동토동 톡톡 터지는 단맛이 일품이다.

내가 사는 이곳 알바니에는 여름이면 팜스탠드(Farmstand)가 여기저기에 들어선다. 팜스탠드는 가판대에서 미국 농부들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파는 곳이다. 스위트 콘은 월마트 같은 슈퍼마켓이 아니라 이런 팜스탠드에서 사야 제맛이다 (보통 주말에 열리는 파머스 마켓도 좋다). 게이드 팜에서 옥수수를 사고 난 지 이틀후에 우연히 팜스탠드를 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옥수수를 더 싸게 팔고 있었다. 하나에 70센트. 그래서 2개를 샀다. 이 옥수수는 게이드 팜 옥수수보다 훨씬 더 튼실하고 더 달다.

먼 타국에서 옥수수를 먹다보니 고향생각이 난다. 아부지는 엄마를 옥수수귀신이라고 불렀다. 옥수수를 못먹어서 한이 맺혀 죽은 옥수수 귀신이 엄마에게 씌우지 않고 서야 저렇게 옥수수를 좋아할 수 없다고 놀렸다. 엄마는 봄이면 밭 여기저기 남아도는 땅에 옥수수를 심는다. 하얀 옥수수, 찰 옥수수, 까만 옥수수, 노랑 옥수수. 하얀노랑까망 옥수수. 매해 옥수수 색깔은 달라진다. 바로 쪄서 먹기도 하고 말려서 옥수수 물을 끓여먹기도 한다. 하지만 쪄서 먹는 엄마 옥수수는 매우 딱딱하다. 압력밥솥에 소금, 설탕, 미원을 넣고 오랜 시간 쪄야 그나마 먹을 맛이 나는 엄마 옥수수.

이젠 틀니 때문에 딱딱한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엄마가 딱 좋아할 만한 미국 옥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