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라못(Anne Lamott)은 작가지망생 학생들에게 소설 쓰기 수업을 가르친다. 소설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말한다. 작가가 본인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진짜 성격을 알기란 어렵다고. 그러면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예를 든다.
" 그들의 외부 특징을 알려주는 요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갑니다. 머리카락, 모양새, 그들이 지녔던 기술, 현명함, 재치. 그러면 우리는 깨닫게 되죠. 우리가 그동안 알고 살았던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겉 포장지에 불과했다는 것을요. 그런데 이런 포장지가 벗겨진 이후에는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책 Bird by Bird에서)
죽기 10일 전 앤의 친구였던 패미는 수표에 본인 이름도 쓸 수 없는 자신을 보고 이런 내가 살아서 뭐 하겠니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앤은 삶은 수표에 사인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친구를 위로한다.
나의 본질을 담고 있는 포장지는 수만 겹이다. 우린 일상을 살면서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포장지에 더 관심이 많다. 누구 포장지가 더 화려하고 비싸 보이고 값어치가 있는지 서로 끝나지 않는 비교경쟁을 태어나면서 시작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한다. 이 경쟁은 참여하고 싶지 않아도 이 사회에 태어나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만 하는 경쟁이다.
본질을 찾는 방법은 뭘까. 그 본질을 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앤은 주어+동사+목적어(주어가 목적어로 동사행동을 한다. 당신이 본질을 볼 수 있다) 구문으로 말한다. 그리고 본질을 찾는 방법을 접속사를 이용해 문장 뒷부분에서 소개하고 있다. 본질을 찾는 방법이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질을 찾는 방법이 더 궁금하다.
You can see the underlying essence
(You 당신은(주어) can see 볼 수 있다 (동사) the underlying essence 잘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목적어))
동사 see와 can see의 차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현재시제인 see로 쓰인 면 "항상 본다, 항상 이해한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조동사 can이 들어가면서 동사의 의미에 감미료가 들어가서 말의 뉘앙스가 달라졌다. can see는 볼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나 본질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can이 들어가 줘야 한다.
수천수만 겹의 포장재 밑에 숨겨진 본질의 특성을 underlying이라는 단어가 간단명료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근 원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관사 the가 쓰여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언급했으므로 그것을 다시 지칭하는 의미에서 the 가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the가 쓰인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면 the는 모든 것을 다 싸잡아서 하나로 만드는 파워가 있다. 본질이라는 것을 모두 다 모아서 한 보따리에 싸매는 것이 바로 the이다.
only when
오직 ~ 할 때만
when은 뒤에 작은 뼈대 주어와 동사 한쌍이 또 나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미 앞에서 이 문장의 큰 뼈대 주어와 동사 한쌍이 나왔다. 영어는 한 문장에는 반드시 주어와 동사가 한쌍만 있어야 한다. 이렇게 또 다른 주어와 동사를 쓰고 싶을 때는 반드시 접속사를 써줘야 한다.
you strip away the busyness,
you (당신이: 주어) strip away (벗겨서 없애다: 동사) the busyness (무의미함을 :목적어)
영어는 strip away처럼 전치사와 항상 같이 쓰이는 동사들이 있다. strip은 분해하고 해체하고 입고 있는 옷을 벗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포장재를 없애야 하기 때문에 옷을 벗듯이 포장재도 없애는 것을 작가는 strip이라는 동사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away는 한 장소에 있던 무언가를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져가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the busyness 도 앞에 the가 붙어서 인생에 있어 모든 분주함, 다망함, 무의미함을 다 포괄해서 지칭하고 있다. busy는 보통 '바쁜'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busy의 어원은 '조심스러운, 걱정스러운'이라는 의미이다. 자기가 신경 쓸 일이 전혀 아닌데 괜히 걱정해 주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영어는 a busybody/ busybodies라고 부른다. 자기 일도 있는데 남의 일까지 참견하려면 정말 바빠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쁜'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이렇게 바쁜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busyness는 '바쁨, 다망, 무의미함'이라는 의미가 있다.
You can see the underlying essence only when you strip away the busyness,
(잘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무의미함을 벗겨 없애는 것입니다.)
본질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입고 있는 포장지를 벗는 것이다. 그러면 이 본질을 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앞에 문장은 아직 쉼표다. 이는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and then
그러고 나면,
and는 앞에 나온 문장과 동등한 또 하나의 문장이 나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some surprising connections appear.
(굉장히 놀라운 문맥(관련성)이(주어) 생긴다(동사).)
이 문장은 주어+ 동사가 기본 뼈대이다. 이런 문장으로 이루어진 모든 영어문장은 "주어가 스스로 동사행동을 한다, 혹은 주어가 동사 상태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connections은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성격, 등장인물에 일어나는 사건,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등의 문맥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이 의미를 적용해도 무난할 것 같다.
내가 입고 있던 포장지를 벗고 나면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행복이 놀랍게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무감각하게 지나쳤던 순간순간에서 행복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낸다 (appear). 내 안에 있는 본질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행복으로 나타난다. 내가 그것들을 행복한 것으로 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행복은 공짜가 된다. 다만 공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입고 있는 포장지를 벗어내야 한다.
강세가 들어간 음절은 최대한 길게 발음하고 강세가 없는 부분은 짧게 말하면 쉽게 강세를 넣을 수 있다. 단어에 최대한 감정을 싫어 문장을 읽어보자. strip은 1음절 단어이다. [스트립]으로 발음하면 3음절이 된다. ㅅ ㅌ는 '으' 소리를 넣어주지 말고 바람만 뺀다. r은 한글에는 없는 발음이다. L(l) 소리와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소리이다. 둘다 'ㄹ' 발음에서 시작하지만, 영어 r은 혀가 입 천장을 닿지 않는다. 반면 L은 혀가 천장에 닿아야 한다. r은 굳이 혀를 돌돌말아 굴릴필요는 없다. 혀가 입 안에서 허공을 치고 목 안쪽으로 약간 끌어당기면 충분하다. 또한 r은 '우' 입술 모에서 시작하고, L은 '으' 입술모양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