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걱정은 오로지 한결같이 하나로 동일하다. 사십이 거의 다 되어가도록 결혼하지 않는 막내딸 걱정. 고집은 세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아버리는 아이. 미국에서 석사 공부한다고 2년 갔다 오더니 이제 곧 결혼하겠지 했는데 1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는 미국에서 박사를 하겠단다.
"그래, 니 알아서 해라."
"엄마는~! 이제 나 포기한 거야?"
"니는 항상 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어브렀은께, 그렇게 살라는 말이제."
박사를 위해 미국에 살면서 한 달에 한번 엄마와 통화하면서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란디, 너 거기서 남자 안 만나냐?"
다음 달 통화,
"그건그러코, 너 언제 결혼할래? 이 씨ㅂㄱ XXX"
전라도 토종 엄마는 딸이고 아들이고 욕을 하는 것을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
다음 달,
"나 걱정 좀 그만시키고 이제 결혼해라, 알았지?"
요새는 이제 엄마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안 나온다.
그래서 그랬는지 막내딸은 8월에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동안 숨겨왔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엄마에게 알려야겠다는 큰 각오도 한다.
결혼하기 하루 전에 엄마한테 말하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결국, 결혼하기 2주 전 알리기로 했다.
"엄마, 나 결혼해."
"그래, 아이고 잘했다."
'엥?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데....'
그동안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숨긴 것에 대해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칭찬일색이다.
결혼하겠다고 첫 통보를 하던 전화통화에서 그날 바로 엄마는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통화했다. 구글번역기로 열심히 한국어 말을 연습하던 남친은 한국말을 그래도 썩 잘 읽었다.
"남자가 한국말이 영 서툴고만. 한국말은 진짜 못하고만."
당신은 영어에 영자도 못한다는 사실에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할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이 잘하는 한국말을 남친이 못한다고 팩트를 날리는 당찬 엄마다.
막내딸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라는 남친의 질문에 엄마 왈,
"잉~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 우리 딸이랑 결혼해 줘서 진짜 고맙당께."
결혼자격증을 받기 위해 타운홀과 약속도 잡았다. 하지만 약속 일주일 전 결혼을 못하게 되었다.
남친이 코로나에 걸렸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기 시작하고 전 세계적으로 격리조치가 시행될 때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인데, 2023년 코로나에 딱 걸렸다. 열이 40도에 달하고,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게 없다고, 기분이 너무 안 좋다고 하는 남친을 보면서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남친도 죽기는 싫다고 한다. 엄마 몰래 결혼하려다 벌 받는 건지 걱정이 된다.
하루는 코로나인줄 모르고 독감인줄 알고 그냥 보냈다가 이틀째 코로나 확인이 되면서 심한 증상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나흘째 되는 날 조금 증상이 호전되었다. 어제만큼 죽도록 아팠던 고통이 오늘은 그나마 없다고.
다행이다.
그런데 내 목이 약간 부은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건가? 코로나에 걸려서 나에게 엄청 미안해하고, 코로나 때문에 결혼도 못하게 된 것 때문에 걱정하는 남친에게 '나 목이 아픈 것 같아'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렸다가 이제는 완치가 된 지인에게 카톡을 했다. 코로나는 단순히 붓기 시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묵직하게 아파온다고 하면서 비타민 잘 먹고 면역력을 잘 챙기란다. 사실 남친이 코로나인 것을 알게 된 날부터 하루에 울트라 파워 종합비타민을 세알씩이나 챙겨 먹고 있었다. 원래는 한 알씩만 먹는 건데, 혹시나 몰라 세게 나갔다.
아직 남친은 코로나가 다 낫지 않았다. 가끔씩 발작적으로 폐암 걸린 사람처럼 기침하는 소리가 나면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다. 내가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워줄 수는 없다. 따뜻한 꿀차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가져다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나마 나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전화통화와 문자로 남친의 상황을 남친 부모님에게 알려준다. 남친 어머니는 나보고 '지구에 내려온 자기 아들의 천사'라며 칭찬 일색이다.
난 천사가 아니다.
그저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