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해교육은 요새 'science of reading‘ 이 뜨거운 감자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효과성이 확실하게 입증된 읽기 교육과정만 교사가 쓰게 하자는 취지다. 언뜻 들었을 때는 정말 그럴듯하다. 반대할 사람 누군가?
[문해의 5가지 기둥: 음소 인식 (의미차이가 발생하는 소리), 발음(파닉스), 유창성, 어휘, 이해]
하지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이견이 많다.
일단, 연구로 입증된 읽기 교육과정이 보통 책과 지도안 등 천편일률적으로 교사에게 주어지고, 학교 행정가들은 교사들이 이 교육과정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충실도'를 체크한다. 충실도를 영어로는 'fidelity'라고 하는데, 이는 보통 "헌신, 믿음, 신뢰"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이다. 결혼한 남녀가 남편과 아내 외에 다른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이것도 fidelity라고 영어는 말한다.
오늘 '과학적 읽기'에 관한 모임에서 이것을 발표자는 'F' word (F로 시작하는 단어로 보통 상스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 단어)로 표현했다. 보통 F word 하면 욕이다. 하지만, 오늘 발표자는 미국 읽기 교육에 있어서 F word는 fidelity라고 말한다.
초중고에서 읽기를 가르치고 있는 많은 미국 교사들은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무시하는 이런 프로그램에 반발한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이 구조화되어 있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좋다고 지지하는 교사도 있다.
오늘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은 영어 발음에 대한 기초인 파닉스와 영어단어가 만들어지는 방법, 영어스펠링 쓰는 규칙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다른 한쪽은, 교사와 학생은 학생이 관심 있어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서로의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는 방법을 토론을 하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둘 다 맞다. 중용이 중요하지만, 아무도 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또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문법 교육'이다.
미국선생님들 중에 영어 문법을 잘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읽기를 가르치는 미국 선생님들도 그렇고, 영어학습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영어 문법이 매우 약하다.
간단한 문장을 주고 이 문장의 동사를 찾으라고 하면 전혀 엉뚱한 단어를 동사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이다. 영어를 잘 말하고 잘 읽고, 잘 쓰는 사람인 미국사람들 조차 영어문법을 잘 모르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과연 영어문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문법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이유는 영어문법 공부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문법을 공부했던 '방식'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6학년 교실을 참관했다. 1년 동안 교사 아이들에게 가르친 영어문법은 오직 하나였다. 문장이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감탄문인지, 명령문인지 구분하게 하는 것. 미국 교사들도 영어문법을 잘 모르기에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한국에서도 한국어 문법 교육이 많이 축소되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국어 선생님이 한국어 문법 용어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외우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1년 동안 한국어 문법은 겨우 3-4번의 수업으로 끝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받은 한국어 문법 교육이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중학교 때 배웠던 한국어 문법은 새까맣게 잊혀졌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한국어 문법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사람도 한국어 문법에 약하다. "오늘은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 라는 문장에서 주어를 찾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오늘은'이 주어라고 한다. (여기서 주어는 없다. 우리말은 주어를 자주 생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주어는 '나'가 될수도 있고, '우리'가 될수도 있고, 문맥에 따라서 달라진다. '오늘은' 하니까 생각난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항상 말했다. 일기를 쓸때 '오늘은'이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하지만, 왜 그 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이 영어문법은 약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문법은 나의 사고를 한층 업그레이드해준다. 영어를 말할 때 문법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은 시간 제약상 어렵고, 오히려 정확한 문법을 쓰려는 강박관념은 영어를 더 버벅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영어를 읽거나 쓸 때 영어 문법은 나의 적이 아니라 나의 수호천사가 된다.
영어문법을 생각하며 글을 읽거나 쓰면 나의 생각이 더 명확해진다. 무엇이 주어이고 동사이며 이 주어와 동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영어문법이 나를 인도해 준다. 그리고 한글식 표현과 영어식 표현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고 이 두 언어의 차이점 그리고 이와 연관된 사고방식의 차이,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하면서 한국어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사람은 영어도 잘할 수 없다.
영어 문법과 한글 문법의 차이와 이에 따른 사고와 문화차이에 관한 문제에는 정답이 절대 없다. 왜냐하면 이것저것 요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보고 갖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이 '과정'자체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고과정이 정답이고, 다른 사람의 사고과정이 정답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생각이 더 그럴싸한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주어가 단수이고 3인칭이면 동사는 시제가 현재일 때 반드시 s를 붙여야 한다.
이런 영어문법 규칙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보통 영어문법 시간에 우리는 이 규칙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외운다. 그리고 수많은 연습을 한 다음 잘 배웠나 테스트한다. 이런 훈련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법교육은 군사 훈련이 아니다. 진정한 문법교육은 사고의 과정과 언어마다 다른 사고 과정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일단, 이 문법 규칙 하나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대체, 왜 주어가 3인칭 단수일때만 현재 시제 동사에 s를 붙이는 건가?
영어는 왜 주어가 하나인지, 아니면 두 개 이상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가?
주어와 동사의 관계가 어떠하기에 왜 동사에 s를 붙여줘야 하는가?
시제란 무엇인가?
현재 시제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현재시제 동사에 붙는 s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왜 영어는 동사에 s를 붙여줘야만 하는가?
이 규칙을 없애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영어에서 주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이것 외에도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아주 많다. 이 문법 규칙 하나를 설명하는데 이런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언제 다른 영어문법을 배우나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고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영어문법은 모두 다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어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모든 문장은 반드시 주어와 동사가 한쌍이어야만 한다"라는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이 규칙에 담긴 문법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질문하는 사람은 영어문법을 공부하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사람이다.
이곳 미국에서 읽기 쓰기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문법교육은 안중에 없다. 문법이란 언어학자만 다루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건지 문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이렇게 외골수로 영어문법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내가 잘못된 것일수도....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된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