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목소리를 죽이는 영어

미국 중학교 봉사활동기

by Sia

아이들은 금요일 점심마다 ENL 선생님 교실에서 함께 모여 점심을 먹는다. 매번 금요일마다 봉사활동을 빠지게 돼서 같이 못하다 이번주 운 좋게 금요일에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ENL 선생님인 킴선생님이 수업을 갔다 아직 돌아오지 않아 혼자서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세명의 아이들이 문 밖에서 주춤한다.


"들어와!"


7학년 생 니멧, 클리아, 그리고 내가 처음 보는 여학생 한 명, 총 세 명이 들어온다. 니멧은 들어오자마자 킴선생님 어디 있냐고 묻는다. 역시 부보다는 '정'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


세 명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원탁책상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니멧은 학교 식당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순식간에 만든 라면, 클리아는 간단하게 베이글이다. 내가 처음 보는 여학생은 8학년생 훌리아. 훌리아는 밥, 감자 그리고 간 소고기가 있는 매우 거창한 점심이었다. 샐러드 위에 딸기를 잔뜩 올린 건 내 점심.


"그게 뭐예요?" 내 점심을 보면서 니멧의 눈이 똥그래진다. 샐러드와 딸기를 같이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맛이 괜찮냐고 묻는다. 난, 물론 맛있다고 대답해 준다.

한참 점심을 먹는데, 니멧과 훌리아가 유창한 터키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니멧이 학교에서 터키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니멧의 영어는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 니멧의 터키는 영어보다 더 훌륭한 것처럼 '들린다.' 터키말을 하는 니멧의 목소리에는 '자유로움'이 흘러넘친다. 니멧의 터키말을 듣기 전에는 몰랐다. 니멧이 영어로 말할 때 이 다채롭고 왕성한 '감정'이 매우 절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훌리아는 올해 초 터키에서 미국으로 와서 그런지 영어가 니멧보다 훨씬 어색하다. 터키말을 하다가 영어로 말하면 훌리아는 심하게 더듬거리고 말도 짧아지고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훌리아가 영어를 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불편함, 어색함'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남편 왈,

"네가 영어 하다가 한국말하는 거랑 정말 똑같아!"

가끔씩 한국에 있는 언니나 엄마와 전화통화를 한다. 그때마다 남편은 내 한국말 목소리가 매우 행복해진다고 한다. 물론 전화통화 내용은 전혀 행복한 내용이 아니다. 또한 난 여태껏 내가 한국말을 하면서 행복해진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기에 남편의 말을 '콧방귀'소리로 무시했었다.


남편의 말을 다시 새겨보니, 니멧과 훌리아가 터키말로 대화했을 때 아이들의 목소리에 '행복'이 잔뜩 담겨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할 때 아이들은 이 '행복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니멧과 훌리아 그리고 나에게 영어는 아직 어색하고 서투른 '도구'다. 우리의 모국어는 자연스러워도 너무 자연스럽다. 문법 규칙과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모국어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에게 영어라는 '도구'는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진한 모국어 악센트, 어색한 표현과 단어 선택,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의 영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영어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가끔씩 이 도구를 떨어트리면서 내 발등을 찍는다.

영어를 배우면서 나의 영어목소리에 '행복'이 담기도록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 행복이란 '항상 기쁨'의 행복이 아니다. 자유함에서 뿜어 나오는 행복의 온기다. 물론 영어를 쓸 때는 한국어를 쓸 때보다 자유를 덜 느끼게 된다. 우리에겐 한국어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


하지만 한국어도 할 줄 알고, 영어라는 또 다른 언어도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자유의 한계를 넓히는 일이다. 즉, 영어를 배우면서 우리들의 자유함은 더 증대된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양한 언어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다. 그렇기에 영어를 공부할 때 우린 이 자유를 충분히 만끽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해줘야 한다.


How are you?

영어로 단순한 한 문장을 말하더라도, 복잡한 영어 문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이 말을 하면서 더 확장되는 내 사고의 '자유함'에 집중을 해보자. 물론 영어 문법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어 문법이 50%라면 이 사고의 자유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나머지 50%다.


영어가 행복한 목소리를 죽인다는 것을 안 이상, 영어가 살생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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