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월드에 첫발 담근 날

추수감사절 음식 준비

by Sia

올해 첫눈은 추수감사절 하루를 앞두고 내렸다.

아직 잔디는 봄날처럼 푸르러 새하얀 얼음가루가 어울리지 않는다. 10시에 나를 데리러 오겠다던 시어머니는 10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다.


"차 키를 찾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 뭐냐. 결국엔 빌 호주머니에서 나왔어!"


차 키를 잃어버렸다고 시아버지 (빌)에게 갖은 잔소리와 구박을 받았다가 결국에 범인은 시아버지였다는 이야기를 콧방귀를 뀌며 시어머니는 하소연을 한다.


"너한테 불평 그만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흉을 계속 본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아버지는 유독 나에게만 '인간답게'행동한다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항상 하소연했다. 시아버지가 화를 낼 상황이 되면 난 그들의 방패가 된 적이 적잖게 있었다.


30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시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자발적으로 추수감사절 음식을 준비해 주러 와줘서 고맙다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앞에서 또 강조하신다. 침대에서 막 일어난듯한 차림새로 인터넷을 보고 있던 시아버지는 몸을 돌려 나를 해맑게 미소지으시며 "마사(시어머니)를 도와주러 와서 고맙다!"라고 하신다.


첫 번째 준비할 음식은 추수감사절의 하이라이트 터키 속에 넣을 스터핑. 보통 가게에서 잘게 자른 스터핑을 팔지만, 시어머니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하신다.

여기저기에서 먹다 남은 빵은 버리지 않고 이렇게 추수감사절 터키 뱃속으로 들어갈 스터핑을 만들 재료가 된다.

토스기에서 막 구운 빵은 이렇게 잘게 자르는 게 어렵지 않지만, 시어머니가 미리 구워둔 빵은 돌처럼 단단해서 자르는 게 쉽지 않다. 시어머니가 "엄마 같았더라면" 왜 빵을 미리 구웠냐고 난리 쳤겠지만, 시어머니라서 불평도 할 수 없다.

마가린에다 잘게 썬 양파를 볶고, 또 잘게 썬 샐러리, 그리고 힘들게 썬 빵 부스러기들을 한데 넣어 볶는다.

그리고 이곳에 다양한 조미료를 넣는다. 시어머니 찬장에 있는 수많은 조미료 중에 시어머니가 원하는 조미료를 찾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이렇게 터키 속에 넣을 속재료는 완성되었고,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두었다.


"다음엔 뭘 할까요?"

"디너 롤 한번 만들어 볼까?"


시어머니는 젊었을 때 파이와 빵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판 적도 있을 만큼 베이킹 실력이 남다르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만든 디너 롤은 내 입맛에 맞지 않다. 너무 팍팍하고 밀가루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밀가루를 체에 밭치고 설탕, 이스트, 계란, 우유 등을 다 넣고 반죽을 완성시켰다. 완성된 반죽은 1시간 정도 놔둬야 한다. 반죽이 부풀 어오를 동안,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에, "다음엔 뭘 할까요?"


크랜베리 샐러드를 만들자고 하신다.

미국 마트에서는 이런 크랜베리를 일 년 연중 내내 판다. 처음엔 이런 걸 어떻게 먹을 수 있지 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시어머니의 크랜베리 샐러드를 먹고 크랜베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미리 크랜베리를 냉동실에서 얼려둔 시어머니는 "그래야 푸드 프라세서가 잘 먹혀"라며 나에게 살림 팁을 전한다.

크랜베리 샐러드에는 샐러리, 피칸, 오렌지 (껍질 포함), 및 파인애플이 들어간다.

이 모든 재료를 젤라틴과 젤로물에 버무리고 냉장고에 두면 이렇게 새콤달콤 맛있는 크랜베리 샐러드가 완성된다.


"빌의 남동생 첫 번째 부인이 이혼한 후에 처음 맞는 추수감사절에 블루진(시어머니의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 물어본 게 바로 이 블루진의 크랜베리 샐러드 레시피였지."


남편의 할머니 블루진의 음식 솜씨가 매우 탁월했다는 이야기를 난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자신의 엄마를 매우 싫어하고 미워했던 빌조차도 블루진의 음식솜씨를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혼했던 며느리조차도 다시 연락하게 만들 만큼 이 크랜베리 샐러드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

크랜베리 샐러드를 다 만들고 나니 반죽도 충분히 부풀어 올랐다. 반죽을 내 마음대로 여러 가지 모양을 내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곧이듣고, 정말 다양한 빵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었기에...) 계란 흰자물을 10겹이나 발랐다.

11시부터 시작했던 추수감사절 음식 사전준비가 거의 오후 6시에 끝났다. 별로 한건 없는 것 같은데 내 다리와 발은 죽겠다고 난리 친다. 만든 음식보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리도구 설거지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것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남편은 6시가 다 되어서 시댁에 도착했다. 추수감사절 날 단 하루만 쉬는 회사일정 때문이다. 간단하게 저녁을 같이 먹은 다음, 다음날 오후 1시에 추수감사절 식사를 같이 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8시가 돼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불평하며 최소 1시간 이상 마사지를 하라고 명령했다. 중간에 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지만, 착한 남편은 1시간 30분을 계속 마사지해 줬다고 나에게 자랑했다.


다음날 일찍 시어머니에 집에 가서 음식준비를 마무리할 일을 생각하며 난 빨리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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