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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영어를 꿈꾸는 것이 잘못된 이유

by Sia

7학년 아이들은 수학시간에 분수와 소수를 서로 바꾸는 연습을 한다. 수학선생님 조디는 분수는 아이들이 이미 지난 단원에서 배웠던 비율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율을 어떻게 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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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스와 몇몇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알(r) 에이(a) 티(t) 아이(i) 오(o)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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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조디 선생님은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몇 초간 말을 못 잇다가 포기한다. 난 나도 모르게 빵 하고 터졌다. 교실 안에서 웃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도 갑자기 무안해져서 웃음을 순식간에 거두느라 혼났다.


아이들의 대답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이 수학시간이라는 것을 순간 잊어버리고 영어시간으로 착각한 거다. 조디 선생님은 분자와 분모로 비율을 쓴다는 "수학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아이들은 비율(ratio)을 어떻게 쓰냐는 질문에 "영어적인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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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의 스펠링을 자신 있게 대답한 아이들은 영어학습자들이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하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이렇게 영어 모국어 학생들도 영어학습자가 된다. 같은 영어이지만, 수학에서 쓰이는 영어와 과학시간, 영어시간에 쓰이는 영어는 차이가 많다. 영어 모국어 학생들도 각 과목 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영어를 새로 배워야만 한다.


회사에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이 수학선생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지 추측해 보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면서 남편은 분자와 분모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난 남편의 모습을 보며 수학시간에 웃지 못한 웃음을 한 보따리 맘껏 펼친다. 아이들이 비율의 스펠링을 알려줬다고 하자 남편의 얼굴에서 조디의 얼굴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영어학습자들은 본인의 영어에는 항상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영어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다 잘못된 것이다. 완벽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중 자신의 한국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갑자기 남편이 진지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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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속해왔던 이야기랑 똑같아. 넌 너한테 너무 가혹해. 네 영어가 완벽하길 원하는 건 잘못된 거야. 자신감이 느껴지는 영어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내가 누누이 강조했잖아. 네 영어에 자신감을 가져!"


예전 같았더라면, 콧방귀를 뀌며 남편을 반박했을 것이다. 완벽하고 고급스러운 영어를 해야지 내 영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제대로 된 영어를 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냐고 열불 내며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보통 영어를 잘해야 영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벽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순서가 180도 잘못됐다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말하고, 쓰고, 읽고, 듣는다는 것은 용감해야만 할 수 있다. 용감하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것이 '용감함'이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사람들은 모두 용감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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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우지 않고 평생 영어라는 한 언어만 알고 지내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이젠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필요가 전혀 없다. 평생 언어에 있어 용감하지 못하고 이렇게 '찌찔하게' 사는 미국사람들을 안타까워해줘야 한다.


못하는데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영어공부에서 가장 기초는 바로 이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이 용기가 없으면 고급 영어문법을 알고 활용할 줄 알아도 영어로 말하려면 꿔다 놓은 보리자루가 된다. 이 용기가 없으면 수많은 영단어를 외워도 외국인만 봐도 손에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완벽함이 아니라 용감함을 꿈꾸며 오늘도 영어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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