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기사 제목으로 영어공부
외교적인 수완과 언변이 뛰어났던 헨리 키신저.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그에게 조언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만 해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소문에 의하면 그와 개인 상담을 받으려면 분당 500달러의 요금을 지불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20분은 상담해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전쟁범죄자라고 부른다.
그의 부고 소식을 전했던 수많은 기사의 제목을 비교해보자.
[빨간색: 주어, 파란색: 동사]
일단 모든 기사들은 헨리 키신저 이름으로 시작한다. New York Times는 가장 깔끔하고 임팩트 있게 Henry Kissenger is dead라고 시작한다. 다른 대부분의 기사들은 쉼표를 사용하여 헨리 키신저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 앞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덧붙여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The Korea Times만 제외하고 모든 기사들의 시제는 '현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 기사가 나올당시에는 분명 헨리 키신저는 이미 죽었는데 왜 기사들은 died라는 과거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현재시제를 사용한 걸까?
영어의 시제(tesne)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time)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물론 시제와 시간의 개념이 비슷한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먼저 형용사인 tense의 의미는 '잡아당겨 팽팽한, 넓혀진, 긴장된 상태'라는 어원이 있다. 쫙 달라붙은 타이즈, 양쪽으로 당겨진 고무줄의 상태를 생각하면 tense의 이미지가 쉽게 그려진다.
명사인 tense는 우리가 여기서 관심이 있는 '시제'를 의미한다. 명사 tense의 기본 의미는 '행동이나 상태의 시간을 나타내는 동사의 형태'이다. 즉, 문법적으로 보면 tense는 '동사의 형태'를 의미할 뿐이다.
영어에서 동사는 '문법적으로 봤을때' 시제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이다. 그래서 영어는 동사만 시제에 따라 형태가 변한다.
그렇다면, 문법적인 아닌, 의미적으로 시제란 무슨 의미일까? 여기서 우리는 형용사 tense의 의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동사의 행동이나 상태가 '긴장된'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현재시제는 긴장된 상태이고, 과거시제는 긴장된 상태가 아니다. 영어는 미래시제가 없다. will이라는 특별한 동사를 빌려서 쓰거나 현재시제를 이용해서 미래시제를 표현하는 독특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will에는 시제가 붙을 수 없으므로, 결국은 미래시제는 없다.) 영어는 그래서 미래도 현재적으로 생각하는 매우 '현재지향적'인 언어이다. 미래에 일어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 처럼 생각하는 언어.
현재시제는 '같은 장소, 그 시각에 무언가와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뭔가 '눈에 보이듯 명백하고, 손에 잡힐듯 한 거리에 있으며, 즉각적인' 상황이나 움직임을 나타낸다. 스포츠 중계는 항상 '현재시제'를 사용한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박진감 넘치는 운동선수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시제가 바로 현재시제이다.
이에 비해 과거 시제는 김빠진 콜라다. 엎지러진 우유처럼 뭔가 게임 오버된 상황이다.
다시 되돌리수 없는 상황인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시제와 비교해서 과거시제는 박진감 넘치는 생생한 사건임에 비해 '한발 뒤로 물러나' 사건을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다.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인간 관계에 적용하면 상대를 존중해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과거시제를 사용해서 상대를 더 존중해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다시 기사제목으로 돌아가자.
현재시제를 사용한 기사들은 헨리 키신저가 죽었다는 것을 '생생감'있는 그대로 보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이 기사 제목을 읽으면 마치 어제 마트에서 산 콜라를 집에 있는 냉장고에 하루 보관하고 다음날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 같은 '생생함 과 톡 쏨‘의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The Korea Times는 현재시제가 없는 관계로 이런 생생함을 느낄 수 없다. "백세에 죽은 헨리 키신저" 라는 의미로 콜라를 다 마시지 않고 부엌 식탁에 하루 놔둔 후 다음날 그것을 그대로 마시는 매우 '밍밍한' 맛이 나는 표현이다. 한국사회에서 헨리 키신저는 미국사회만큼 그런 대중적인 영향력이 많은 인물은 아닌것이다.
마지막으로 키신저의 나이를 표현하는 두가지 방식을 짚어보고 끝내자. 대부분의 기사들은 [at 100] 라고 전치사 at을 사용한다. 하지만 로이터(Reuters)는 [ aged 100] 라고 '분사'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at 전치사는 정확한 어느 지점을 나타낸다. 키신저가 인생의 여러가지 지점 중, 100이라는 지점에서 "딱"하고 죽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aged는 분사인데, 분사라는 의미는 '분리되어 나온 단어'라는 의미있다. 이 단어는 age라는 '동사'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그래서 '동사적인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장에서는 동사로 사용되지 않고 형용사나 부사로 사용된다. aged 100라고 쓴 기사는 키신저가 나이가 들어가다가 100이라는 곳에서 나이가 드는 것을 멈추는 상황을 강조한 것이다. at 100이나 aged 100이나 둘다 핵심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 핵심을 전달하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다.
핵심과 요지만 순식간에 파악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렇게 눈꼽만큼 다른 뉘앙스를 느낄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과 같이 영어도 분명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