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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직독직해'와 '끊어 읽기'가 한참 유행했다. 직독직해는 영어를 순서대로 읽고 그대로 똑같이 순서대로 우리말로 해석하라는 원칙으로, 절대 영어문장 끝에 나오는 단어를 먼저 한국말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원칙이 유행하기 전에 나와 대부분의 친구들은 영어문장을 읽고 나서 문장 끝에서부터 한글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영어와 한글의 단어 순서가 반대라서 해석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John visited Seoul recently with his family.
직독직해: 존은/ 방문했다 / 서울을/ 최근에/ 그의 가족과 함께
한국식 해석: 존은/ 그의 가족과 함께/ 최근에/ 서울을/ 방문했다.
한국식 해석을 보면 먼저 주어인 John이 가장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문장 마지막에 있는 with his family를 해석하고 바로 앞에 있는 recently를 해석하면서 뒤에서 다시 앞으로 오고 있는 상황이다.
직독직해를 하면 영어를 읽으면서 곧바로 한글로 해석하며 이해가 가능하지만, 한국식 해석은 영어를 일단 읽고서 다시 문장 끝에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해석해야 해서 시간이 훨씬 더 많이 든다. 하지만 직독직해에 정확한 '조사'만 붙여주면 직독직해로 해석해도 우리말 의미 이해가 가능하다.
즉, 직독직해를 하려면 문장의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을 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석할 때 적절한 조사(은, 는, 이, 가 혹은 을,를, 에게 등)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끊어 읽기는 단어를 하나하나 해석하기보다는 의미단위로 끊어서 해석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영문법책에서 영어 끊어 읽기는 '전준관'앞에서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전준관이란, 전치사, 준동사(동명사, 과거분사, to부정사), 관계대명사를 줄임말이다. 전치사, 준동사, 관계대명사는 영어에서 보통 형용사나 부사 역할을 한다. 꾸며주는 역할을 하므로 뭔가 말을 더해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멈춰서 한숨 쉬어 끊어 읽기 하는데 편한 것이다. 이런 식의 끊어 읽기는 주어, 동사, 목적어를 따로 끊어 읽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주어 끊고, 동사 끊고, 목적어를 끊고 그리고 전준관에서 또 끊는다. 물론 많이 끊으면 읽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의미이지만,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를 확실히 찾기 위한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다.
John visited Seoul recently with his family.
보통 끊어 읽기 방식: John visited Seoul recently / with his family.
나의 끊어 읽기 방식: John / visited/ Seoul / recently / with his family.
직독직해원칙을 설파하는 고수들은 원어민은 절대 문장을 다 읽고 나서 문장 끝에 가서 다시 해석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원어민"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이니 그들이 하는 데로 우리도 영어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나도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직독직해'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천명의 원칙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절대 '영어 원어민'이 될 수도 없고 '원어민'이 되어서도 안된다. 첫째, 영어 원어민이라는 개념은 허상이다. 서울말씨, 경상도/전라도 사투리 등 한국말도 다양하듯이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말은 보통 서울말씨를 표준어라고 정하지만, 영어는 표준어에 해당하는 영어가 없다. 미국은 아직도 공식 언어가 없는 나라다.
둘째, 소위 영어원어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항상 문장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일자로 읽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가서 다시 읽기도 한다. 한국어가 원어민인 우리에게도 간혹 있는 일이다.
셋째, 우리는 '영어원어민'이 아니라 영어도 잘하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영어가 한국말과 다르듯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도 토종 한국인들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어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영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영어공부의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직독직해가 잘못됐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뭔가 하나의 원칙이 무조건 좋다고 맹신할 때는 문제가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들은 특히나 직독직해보나는 의역으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직독직해의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감칠맛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 표현도 한국말로 표현하면 영어식 표현만이 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단어식 번역으로 전달되지 않는 그 언어만의 고유한 느낌은 따로 공부해줘야 한다. 무조건 일대일단어 대응법으로 언어를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How are you?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직독직해로 하면 "어떤 상태입니까 당신은?"이다. 보통 이 표현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미국문화에 빗대어 봤을 때 그들이 쓰는 how are you? 는 한국사람들이 평소 쓰는 다음말과 비슷하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지내세요?"
"식사하셨어요?"
"잘 지내세요?"
(옷가게 점원이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요즘 어떠세요?"
등등... 다양한 표현을 대신할 수 있는 영어표현이다. 무조건 직독직해로 해석하거나 특정한 의미 (안녕하세요)만으로 고정시켜 생각하는 사람은, 영어모국어자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쓰는 how are you?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식 고유의 역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현들이 있다. 대체 이건 어떻게 영어로 말해야 하는 건지 알쏭달쏭한 표현들이다. 한국말로 하면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완전 다른 표현이 되지만 영어는 문맥이 달라져도 똑같은 단어를 이용해서 똑같이 표현한다.
Are you talking to me.?
(A) 너 나한테 씨브랑거리는 거냐?
(B) 저한테 말하시는 건가요?
영어로 말하는 건 상황이 달라도 전부 똑같은 단어와 표현을 한다. 물론 상황과 문맥에 따라서 강세를 주는 단어의 위치가 달라지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말로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지면 어휘와 문법이 달라져야 한다. (A)로 말하는 경우는 매우 비격식적인 상황에서 상대가 나의 기분을 많이 상했다는 의미를 크게 함축하고 있고, (B)로 말하는 경우는 매우 격식적인 상황에서 예의 바르게 상대가 말하는 대상이 혹시 자신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A)는 의역한 것으로 볼 수 있고, (B)는 의역보다는 직역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의역이 더 좋냐, 직역이 더 좋냐가 아니라, 둘 다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의역의 의미를 모른다면 "씨브랑"이 영어로 뭘까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gibberish (횡설수설)이라는 특정 단어가 있긴 하지만,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단어 수준에서 표현하려면 '씨브랑'에 완벽히 일대일 대응되는 영어단어를 찾을 필요가 없다.
Your parents said it so often.
(A) 너의 부모는 말했다 그것을 / 매우 자주
(B) 너의 부모가 그것을 입에 달고 살았다.
often은 '자주, 종종'이라는 뜻으로 우리는 외웠다. 그리고 직역할 때도, 직독직해 할 때도 이 의미를 사용한다. 하지만, 의역하자면 (B)의 의미가 되고 '입에 달고 살만큼 (자주)'라는 전혀 새로운 표현이 된다. 또한 동사 자체가 영어는 say지만 한글에서 '살았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 say it often을 의역한 한국어는 '입에 달고 살다'로 표현한 것이다.
직역하는 영어는 감정이 절제되고 격식을 갖춘 고운 언어라면, 의역하는 영어는 일상의 감정이 그대로 실린 천민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곱게만 배우면 영어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영어는 역사상 하층민의 언어이기도 했다.
결론은, 우리는 의역도, 직역도, 직독직해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하나만 고집해서 그것만 한 우물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그러나 각 방식이 가장 적합한 경우들이 있다. 의역으로 영어공부하기 가장 좋은 것은 '생활영어'가 아닐까 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잘 사용되는 표현들을 한국말로 할 때는 '아 다르고 어'다르듯 매우 다른 표현들이지만, 영어는 의외로 같은 표현을 쓰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영어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단어를 어떻게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문장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한국말은 다양한 어휘로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는데 반해 영어는 이런 미묘한 감정을 강세와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표현한다.
목소리 연기를 과장시키듯 영어를 말하면 영어를 잘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한국 성악가나 가수들이 영어로 노래를 부르면 영어를 잘하는 듯이 들리는 이유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