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설, 제삿날이면 엄마는 빠지지 않고 두부 조개 조림을 만들었다. 개운하고 깔끔한 바지락 맛은 두부 속에서 재탄생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미국)에서는 바지락을 팔지 않는다. 생선이라곤 연어와 새우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종류의 생선도 팔지만 고등어, 굴비등 한국에서는 너무나 쉽게 먹는 생선은 보기 어렵다.
아궁이에 불 지펴 나온 숯으로 엄마가 구워 주던 굴비맛이 최상급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먹고 싶을 때는 해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집 근처 마켓에서 살 수 있는 재료로 두부조개조림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미국 마켓에서는 다양한 두부를 판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두부, 야들야들한 두부, 단단한 두부, 더 단단한 두부…. 역시 개인주의 나라답게 같은 두부라도 종류가 많다. 처음엔 대체 어떤 두부를 사야 하나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병아리콩이 몸에 좋다는 말을 들어서 병아리콩 두부를 샀는데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직행.. 야들야들한 두부도 괜찮을 것 같아 샀는데, 이건 연두부랑 비슷하다. 다음으로는 가장 단단한 두부를 샀는데, 이건 정말 너무 딴딴하다. 결국 엄마 손 맛이 나는 두부조개 조림에 가장 적당한 것은 "단단한 두부"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재료는 바지락이다. 하지만 바지락이 없는 관계로 우리나라 키조개 관자와 비슷하게 생긴 가리비를 샀다. 매우 큰 것도 있지만 옹기 졸망하게 생긴 아가를 샀다. 생으로도 종종 판매하지만, 냉동이 더 싸기에 냉동을 구매.
다섯 시에 장 보러 나간 남편은 저녁 7시가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는다. 8시가 되어야 돌아올 사람이다. 집 밖에 있는 사람만 돌아오길 기다리면 시간이 더 느리게 가기에 혼자 먹을 밑반찬 만들기에 가장 최상의 시간이다.
가장 먼저 두부를 포장용기에서 꺼내 잘라준다.
한국 두부랑 똑같이 생겼다. 맛도 비슷한 듯하다.
한 입에 먹기 좋을 만큼 한 크기로 잘라준다. 모두 다 같은 크기로 자르면 좋으련만, 칼 솜씨가 엉텅리인 관계로 어쩔 수 없다.
냄비에 물을 약간 넣고 애기 가리비를 넣어준다. 그리고 소금도 약간. 1분 정도 끓이고 있는데, 조개를 너무 빨리 넣어준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끓는 물에 넣어줬어야 했는데... 뭐. 나 혼자 먹을 거니 문제없다.
조개가 보글보글 끓는 동안 마늘 두 쪽을 빻아서 넣어준다. 그리고 몇 달 전 근처 한국 마트에서 샀던 조미료를 넣어주었다. 작은 봉투에 든 절반을 넣었더니 맛이 딱 맞다.
잘라둔 두부 투하. 두부 속에 뽀 하얀 조개 국물이 다 배길수 있도록 조려줘야 한다. 거의 10-12분 정도 중불에서 약불로 보글보글.
시원한 조개 국물이 일품인 두부조개 조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깨와 참기름 한 숟가락을 넣어주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7시 59분에 집 문을 열었다면서 절대 8시가 아니라고 박박 우긴다.
이런 맛난 것을 못 먹는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이 맛있게 먹어주지 않기에 야속하기도 하다.
뜨거울 때 먹으면 혀와 입천장이 데므로 반드시 식혀서 먹어야 한다. 차갑게 먹으면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