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든점은 언어 장벽도, 문화 차이도, 인종 차별도, 총기 사고도 아닌 먹는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흔히 즐겨먹던 분식이 가장 그립다.
물론 한국 분식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배달시킬 수 있지만 돈이 문제다. 일단 음식 값이 비싸고 배달시키면 배달비용에 그리고 팁까지 줘야 하니 그 비용이 일개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순식간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된다. 미국에서 박사를 나와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된 어떤 사람이 돈을 벌면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걸 들었다.
'학생 신분일때는 그냥 싼 초콜릿만 먹을수 있었지만, 돈을 버는 지금은 트러풀 초콜렛, 시솔트 초콜렛등 다양하고 고급진 초콜렛을 마음껏 먹을수 있다는 차이가 있죠.'
아마 이 사람은 초콜릿 애호가인가 보다. 나 같으면 한국 음식 먹고 싶을때 마음껏 사서 먹을 수 있는 자유라고 말할 것 같은데. 아마도 미국에서 교수로 돈을 벌어도 한국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은 여전히 비싸서 그런걸까. 대체 미국에서 한국 음식은 왜 비싸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맛있는 한국 음식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판다면 정말 좋을것 같다. 그러면 난 단숨에 단골이 될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아니면, 미국 대형마트인 월마트, 타켓, 마켓32 같은 마트에서 한국 식료품을 값싸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식도 먹고싶을때 내가 바로바로 해서 먹을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세상은 역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마켓32와는 달리 한인마트는 차가 있는 친구에게 한달에 한번 애걸해야만 갈 수 있다. 그래서 한번 갈때 쟁여두고 먹을수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많이 사는 편이다. 100장이 넘는 구운 김밥김, 냉동시켜서 파는 오뎅, 김치, 미역, 조미김이 내가 잘 사는 물건들이다.
그래서 오늘 처럼 김밥이 먹고 싶어 죽고 싶을것 같을 때는 집에 있는 재료로 김밥 비스므레한 것을 만들어 먹는다. 가장 아쉬운 것은 노랑 단무지가 없다는 것. 단무지에 대한 아쉬움을 맛있는 김치가 달래준다.
내가 싼 김밥을 바로 단숨에 잘라서 먹는데, 갑자기 내 신세가 처량해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는 법. 깁밥 몇 조각이 배속에 들어가서 김밥 욕구를 해소시키자 이젠 더이상 김밥이 더 먹고 싶지 않다. 그래도 김치 몇 조각을 더 집어 먹고나서 김밥을 다시 먹는다.
한 달에 한번씩 한국에 사는 엄마와 통화를 한다. 통화는 항상 먹는 얘기 부터 시작한다.
'어그저께 야들야들한 상추 뜯어서 상추지 해서 먹었는디 엄청 마씨드라. 그래서 니 생각 나드랑께. 이것은 미국에서 공부한다고 이런 맛있는것도 못 먹고 있겄다 하고 생각헜다.'
'혼자 먹으면 맛 없잖아. 누구랑 같이 먹었어?'
'이~잉. 나 혼자 먹었제. 그래도 난 맛있드라.'
난, 혼자 먹으면 맛 없는데... 아마 한국의 물과 한국에서 나는 모든 재료들의 맛 차이인가 보다. 아니면 나의 음식솜씨가 문제일수도, 아니면 둘다 있을수도...
김밥이 먹고 싶어 미칠것 같을때는 김밥 비슷한 것을 해 먹어 그 욕구를 잠시 달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 김밥 맛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지기만 한다.
마당에서 구워먹던 굴, 김장해서 바로 만든 김치에 싸 먹는 수육, 여름에 엄마 텃밭에서 자라는 무잎을 뜯어 싸 먹은 돼지고기, 젓갈 듬뿍들어간 빠알간 무채, 오징어 철이면 엄마가 항상 시장에서 사와서 바로 삶아 먹던 갑오징어와 먹물오징어, 김치를 둘러싸 먹던 막 만든 뜨근한 두부.
김밥이 먹고 싶을때는 한국에서 내가 맛나게 먹었던 그 모든 음식들이 떠오른다. 비슷한 식재료로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도 그 맛은 절대 나지 않는다. 한국에 가야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먹고 싶은것도 못 먹는 고생이 미국 박사과정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란걸 미처 몰랐다. 삼겹살과 수육이 먹고 싶은데 못 먹을때는 정말 나의 한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지금 하는 짓 잘하고 있는 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