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짧은 서평
서른 살에 독신으로 죽은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을 모를 것이라고 했고, 그녀가 쓴 로맨스 소설은 몇 십권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몰랐다. 그녀가 표현한 사랑과 증오가 얼마나 뚜렷하며, 또 입체적인지.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브론테였다.
누군가,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를 들어 영문학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라고 일컫은 적이 있다. 나는 이에 빗대어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를 들어 영문학의 이단아이자 야수라고 감히 참칭하고 싶다. 에밀리 브론테가 마치 1인치 붓으로 찍어서 표현한 듯한 언덕 위 '워더링 하이츠' 저택에 3대를 걸쳐 펼쳐지는 사랑과 증오의 비극은 흔히 '영문학 3대 비극' 이라고 불리듯, 그 완성도가 대단하다.
이 소설이 훌륭한 이유는, 그러한 비극을 관망하는 시선 - 즉 하녀 엘런의 시각 - 으로 쓰여지고, 세 들어사는 젊은이 록우드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이야기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설의 비극성이 짙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비극성의 원천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답습'이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죽은 이후 펼쳐지는 힌들리의 폭정,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 캐서린과 에드거 린튼의 결혼, 그로 인해 촉발된 히스클리프의 폭탄같은 증오. 그런 관계들이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사이의, 히스클리프와 린튼 가(家)사이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러한 관계 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봐야 할 관계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고아였고, 캐서린 언쇼는 그에게 천국이었다. 캐서린의 당돌한 성격 때문에 둘은 멀어지고, 캐서린이 에드거 린튼과 혼인하면서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 사이의 관계는 애정이라기에는 너무 거칠고 증오라기에는 너무 서로 죽고 못사는 관계이다. 그래서 서로 유령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일이 있고 나서, 그러니까 힌들리에게 복수하고 린튼 가를 붕괴시키고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캐서린 2세를 며느리로 받아들인 시점에서, 자신마저 파괴시킨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환상을 보고 죽게 된 것은 그 미친 사랑의 마침표였다.
"들어와! 들어오라고, 캐시! 오란 말야. 오, 한번만 들어와줘! 오오 내 사랑! 한번만 내 말을 들어줘, 캐서린! 마지막으로!"
록우드가 캐서린의 유령을 보고 히스클리프가 절규하는 소설 초반의 기묘한 경험과 윗층으로 올라가 신음하는 히스클리프의 쓸쓸한 뒷모습이 오버랩된다. 어떤 것이 이 사랑을 그런 비극으로 몰아세웠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난해하다. 확실한 것은 관계의 부적합성과 갈라지는 운명이 히스클리프를 어두운 골짜기로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극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것이다. 정말 영문학의 불후의 걸작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