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든 순간이 광란의 하이라이트다.

<스탑 메이킹 센스> 감상평

by kimsy

어떤 남자가 회색 양복을 입고, 어쿠스틱 기타를 맨 채 관객에게로 간다. 그의 손에는 라디오 하나가 들려 있다. 관객석에서는 함성이 들린다. 남자는 라디오를 바닥에 놓고선 관객들에게 말한다.

출처 : TMDB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아무런 설명도, 자기소개도 없이 대뜸 이 남자는 테이프에서 나오는 비트와 함께,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Psycho killer

사이코 살인마

Qu'est-ce que c'est?

그게 뭐지?

Fa-fa-fa-fa, fa-fa-fa-fa-fa, fa

Better run, run, run, run

빨리, 빨리, 빨리, 빨리

Run, run, run away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걸


이 광란의 라이브, 매 순간이 하이라이트인 미친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스포일러 주의!


# 악기가 점층되는 환상적 순간

상술했듯이, 어떤 남자가 기타를 치며 <Psycho Killer>를 부른다. 노랠 부르던 남자는 넘어지는 듯한 안무를 하며 금방이라도 곧 넘어질 것만 같다. 그 남자는 홀로 폭주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곡 <Heaven>이 나오며 여성 한 명이 등장한다. 여성은 베이스를 치며 노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 곧 쓰러질 것 같던 남자는 이제 안정적으로, 서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드럼이 등장한다. 감성적이던 노래는 점차 경쾌해지기 시작한다. 이후 어쿠스틱 기타가 리듬 기타가 되고, 리드 기타가 등장하며 극장은 점점 더 달아오른다. 이후 키보디스트와 퍼커션, 코러스 두 명이 등장하며 콘서트가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음악은 점점 더 획기적인 사운드로 차오르며, 관객을 광란의 밤으로 이끈다. 모두들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프론트맨은 이제 정장을 벗고 셔츠 차림이다.

<Burning Down the House>-<Life During Wartime>으로 이어지는 라이브 씬은 초반부의 대미를 장식한다. 프론트맨은 바닥에 뒹군다. 무대 전체를 뛰어다닌다. 코러스 두 명도 무대 위에서 뛰고 있다. 모든 연주자들이 춤을 춘다.

maxresdefault.jpg 출처 : 나무위키

This ain't no party, this ain't no disco

이건 파티도 아니고, 디스코도 아니야

This ain't no fooling around

이건 장난치자는 게 아니야

No time for dancing or lovey-dovey

춤 출 시간도 사랑을 나눌 시간도 아니야

I ain't got time for that now

지금은 그럴 시간 따위 없어


# 조명, 스크린

이 무대의 2막에서는 마치 가부키 연극같은, 쨍한 조명과 관능적인 문구로 된 후면 스크린이 추가된다. 프론트맨은 올백머리가 되었고, 밴드는 지금까지 선보였던 라이브와는 다르게, 보다 더 절제되고 심오한 무대를 펼친다.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는 조명이 큰 관여를 한다. <Swamp>에서는 아주 새빨간 조명의 등장으로 프론트맨이 마치 뱀파이어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를 내며, <What a Day That Was>에서는 조명을 하단으로만 제한하여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씬을 연출한다.

조명 자체가 영화를 구성하는 열쇠가 된다. <That Must Be the Place>에서는 아예 스탠드 하나를 정면에 배치한다. 프론트맨은 이것을 가지고 놀며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한다. 후면에서는 배꼽이나 동물의 발같은 선정적인 이미지가 연쇄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은 토킹 헤즈의 명곡이자 2막의 종지부인 <Once in a Lifetime>으로 이어지며 절정을 맞는다. 프론트맨은 몸을 연신 부르르 떨며 노랠 부른다. 프론트맨의 이런 즉흥적인 안무는 마치 어떤 종교 의식을 방불케 한다. 음악은 남자의 절규가 되며, 2막이 끝난다.


maxresdefault.jpg 출처 : 유튜브

Letting the days go by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Let the water hold me down

물이 나를 짓누르게 해

Letting the days go by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Water flowing underground

물이 지하에서 흐르네

Into the blue again

다시 사라지는 거야

After the money's gone

돈이 떠난 뒤에는

Once in a lifetime

일생에 단 한 번

Water flowing underground

물이 지하에서 흐르네


# 광란의 라이브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신경쇠약에 걸린 프론트맨이 잠시 빠진 사이, '탐 탐 클럽'이 잠시 난입해(토킹 헤즈가 연기하는 가상의 밴드이다). 괴상한 게다리춤을 추다가 저지당하고, 그새 다시 나타난 프론트맨은 우스꽝스러운 빅 수트를 입고 공연을 펼친다.

kPDmoP4BCFaELJVBog4nIV4CPge.jpg 출처 : TMDB

I got a girlfriend that's better than that

내 여자친구가 그것보단 나아

She has the smoke in her eyes

그녀는 눈에 연기를 머금었지

She's moving up, going right through my house

그녀는 움직여, 내 집을 뚫고 지나가

She's gonna give me surprise

그녀는 날 놀라게 만들었지


나이브한 멜로디가 지나가고, <Take Me to the River>에서 그루브의 절정을 밴드는 보여 준다. 아주 늦게 프론트맨은 멤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소개한다. 그 밖에 다른 설명은 없다. 그 와중 프론트맨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마지막 트랙은 <Crosseyed and Painless>.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지나가고, 이제서야 카메라는 관객석을 조금씩 비추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예상했듯이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은 하나같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다. 누가 아티스트인가, 누가 광대인가, 춤 추지 않는 사람은 없는가. 그렇게 이 미친 한 번 뿐인 콘서트는, 가장 짧고 강렬했던 1시간 28분은, 끝이 난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1983년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가 A24의 리마스터링을 거쳐, 드디어 2025년에 한국에 상륙했다. 해당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설적인 미국의 록 밴드인 '토킹 헤즈'의 1983년 실황 공연을 담은 '콘서트 영화'다. 콘서트 영화라 함은 어떤 가수의 팬들을 위해 제작된, 아티스트의 실황 공연을 담은 영화다. 영화관의 빵빵한 사운드로 콘서트의 감동을 느낄 수 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팬들을 위하여 이러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콘서트 영화는 그런 콘서트 영화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왜일까?


# 다큐멘터리인데, 인터뷰가 없다

이 영화는 1시간 28분동안 관객석을 단 한 순간만 비춘다. 다른 순간들은 모두 토킹 헤즈의 무대 그 자체에만 할애되어 있다. 또한 그 흔한 인터뷰가 없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떤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들의 인터뷰가 필연적이게 담기기 마련이다. 공영방송에서 방영되는 그런 다큐멘터리는 물론이요, <액트 오브 킬링>같은 걸작 다큐멘터리 영화도 인터뷰가 있다.

그러나 <스탑 메이킹 센스>는 인터뷰 따위 없다. 심지어는 그 흔한 밴드 멤버 소개도 맨 마지막에 겨우 이름만 밝히는 식으로 한다. 왜 그렇게 영화는 구성되었을까? 그 이유는 멤버 이름따윈 하등 이 영화에는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절대다수의 것은 음악과 퍼포먼스이다.

여기서 만일 인터뷰를 넣었다면 해당 영화는 오히려 영화를 특색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예 '인터뷰를 없애는'파격적인 시도를 통해 <스탑 메이킹 센스>는 음악과 퍼포먼스로만 가득 차게 된, 굉장히 순도가 높은 음악 영화가 되었다.


또한 전술했듯이 이 영화는 관객석을 마지막 순간에만 비춘다. 공연이 가장 달아오른 그 순간만 담는다. 모두들 춤을 추고 있다. 연주를 하고 있는 밴드 멤버들과 춤을 추고 있는 관객들이 교차편집으로 나타난다. 마치 이 콘서트장 전체가 도가니 안에 있는 장렬한 샐러드볼처럼 느껴진다. 이 콘서트의 마지막 장면으로 참 적당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말 그대로 실험적인 토킹 헤즈의 음악, 그리고 퍼포먼스

토킹 헤즈의 음악은 실험적이다. 뉴욕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인 토킹 헤즈는 기존 펑크의 반항적인 사운드는 물론이고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감성적이고도 실험적인 전자 사운드 등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섞인, 단 하나뿐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운드가 지적이고도 난해한 가사와 어우러져 그들만의 음악을 토킹 헤즈는 만들어 냈다.

해당 영화는 3막으로 구분 할 수 있다. 1막 - 밴드의 형성, 2막 - 밴드의 완성, 3막 - 밴드의 퇴장. 그리고 각 페이지를 구성하는 음악과 영상이 하나 겹치는 게 없다. 영상이 비슷하다 싶으면 음악이 다르고, 음악이 비슷하다 싶으면 영상이 다르다. 사실 노래 자체가 구분된다기보다는 한 호흡에 88분의 음악을 담은 샘이라서 마치 '음악들이 모여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여기에 조나단 드미의 카메라가 합세해 모든 퍼포먼스를 빠짐없이 담음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퍼포먼스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위태롭고, 때로는 괴상하고, 즉흥적인 그들의 안무는 티나 웨이머스와 크리스 프란츠의 베이스 및 드럼의 단단한 리듬감 위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글로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광란의 라이브로 향하는, 티켓이라는 초대장을 들고선 그저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했다. '아 이제 몇 달간은 토킹 헤즈 노래만 듣고 살겠구나.' 그들의 라이브는 어떤 전설이 되었고 콘서트 영화의 패러다임을 영원히 변화시켜놨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다. 필자가 콘서트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바 이 영화가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확실한 건 이거다. 이건 진짜 미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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