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짧은 서평
그는 천재였다. 그가 3살이었을 때 그는 시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5세에 중용과 대학을 익혔다.
세종이 그를 불러 시를 짓게 하자, 훌륭한 시를 지어 관리들과 세종을 놀라게 했다.
그는 생육신이었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과거 준비를 하던 그는 이에 반발해 책을 태우고 머리를 깎고 '설잠' 이라는 법명으로 전국을 방랑한다.
세조가 승하하고, 성종이 즉위하자 관직에 다시 진출하고 싶었던 그. 그러나 이 꿈도 좌절되었다.
그가 환속을 했다.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듬해 아내가 죽었다. 폐비 윤 씨 사건이 일어났다.
59세, 그는 부여 무량사에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김시습이었다.
세조 집권기에, 그는 경주 금오산에서 7년 은거했다. 그때 그는 《금오신화》를 썼다. 한국 문학사 최초의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오신화》, 그 소설집의 주제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모두 비슷하다. 첫째. 주인공과 누군가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둘째, 신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한다. 셋째, 비현실로 현실을 성찰한다. 넷째, 감정의 전달에 한시를 적극 활용한다.
《금오신화》는 총 5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만복사저포기>는 부처가 맺어준, 죽은 여인과의 사랑이 덧없이 증발하는 이야기이고, 반대로 <이생규장전>에서는 이생과 최랑의 영원한 사랑을 애절하게 서술한다.
한편 <취유부벽정기> 에서는 선녀와의 일시적이고 기묘한 만남을 나타낸다. 이 세 작품은 사랑을 중심적으로 다루며, 이들은 김시습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관직, 이상 등을- 상징한다. (계유정난 당시의 상황과 단종에 대한 김시습의 절개를 나타낸다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생규장전> 에서 최 여인을 사육신으로 보고, 이생을 생육신으로 본다면 최 여인을 묻어 주고 병들어 죽는 이생이 꽤나 비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금오신화》의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보다 정치적이고 또한 개인적이다. <남염부주지>에선 염라대왕과 박생 간의 대화로 당시 조선의 제사 신앙과 성인, 그리고 귀신에 대한 토론을 한다. 여기에서 김시습은 자신의 철학을 펼친다. <용궁부연록>에서는 마치 그가 어릴 때 세종을 만나고 왕이라는 존재와 재회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남은 것처럼, 용왕을 만나 그에게 인정받고 은거한다.
김시습은 이 5개의 소설로 자신의 인생을 서술했다. 이 다섯 작품에서는 관직 진출 실패로 포부를 밝히지 못한 안타까움과, 계유정난의 한을 담은 것이 틀림없다. 또 이 5개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디론가 증발한다. 이는 아마도 세계에서 벗어난 당대 생육신들과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부조리함을 느낀 관리들과 지식인들의 고민을 대변하는 것일 것이며 그와 동시에 김시습의 유랑을 상징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가 유랑했다고 해서 세상을 완전히 등진 것은 아니었다. 김시습은 이 허구의 5개 이야기로 현실을 다시 바라본다. 그의 유랑의 세월과 한의 세월이 어디까지 왔는가, 현실의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것이 어떻게 허상이 되어 있는가. 소설은 왜 허상인데 자꾸만 현실을 생각나게 하는가. 하고 말이다. 이 고달픈 현실이란 것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외자(外者)인 인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고, 김시습은 아마도 생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