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를 글로 배웠어요.
벌써 몇 번째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검도는 예의를 중시한다. 그래서 검도를 배우러 갔을 때, 당신이 검도복을 입기도 전에 (왜냐하면, 주문한 검도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테니까) 지도사범으로부터 제일 먼저 배우는 것도 바로 예의에 대한 것이다. 바로 “도장삼례(道場三禮)”다. 도장삼례란 검도를 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법 세 가지 즉, 수련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왼쪽 가슴에 손을 대고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예를 지키는 것, 수련자끼리 경기나 연습에서 상대편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국기에 경례하거나 스승에게 “차렷, 경례”를 외치는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글쎄…. 이러다 학교, 군대, 하다못해 예비군 훈련장이나 민방위 교육, 심지어는 국제대회 시상대에서 태극기 바라보며 애국가 따라 부르는 것까지 문제 삼을라. 대개 중국무술이나 한국 전통 무술은 이런 식으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렇다고 이 무술들이 예의를 모른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한다는 게 아니다. 말꼬리 잡지 말자),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현대 검도가 일본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장삼례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해결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무시하고 적당히 싹수없는 사람 행세를 하든가, 둘째, 시키는 대로 예의를 차리든가. 두 번째의 시키는 대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추천한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당신의 사회적 평판도 긍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어쨌건, 검도는 예의를 중시한다. 하지만 검도가 예의 그 자체는 아니다.
인사하는 것을 배우고 나면, 서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울 차례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면 “싸움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 같은 밈(meme)을 볼 수 있는데, 똑같진 않지만, 그 의도는 비슷하다.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자세”다. 유도나 검도 같은 일본 무술에서는 이런 자세를 “자연체(自然體)”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안정감 있고 자연스러운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안정감 있고 자연스럽게 서 있으면 상대의 동작에 대해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다.
자연체는, 목덜미를 세우고, 턱을 당기고, 어깨를 내리고, 등을 펴고, 허리를 펴고, 하복부(단전)에 힘을 주고, 양쪽 무릎은 여유를 두고 살짝 편 채로, 전체(상대를 포함해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 모두)를 바라보는 자세를 말한다. 중국무술에서는 이런 자세를 침견수주(沈肩墜肘-어깨와 팔의 힘을 빼고 가라앉힌다), 허령정경(虛靈頂勁-목에서 힘을 빼고 머리를 바로 세운다), 함흉발배(含胸拔背-가슴을 자연스럽게 오므리고 등을 편다) 같은 용어로 설명한다. 결국, 같은 자세다.
그러고 보면, 진짜 고수는 상대가 서 있는 자세만 보고도 초심자인지 고수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도 사실처럼 들린다. 그러니 거울 보며 연습해야 한다. 내가 제대로 서 있는지.
보통 검도를 배우러 간 첫날 죽도를 잡는 방법과 칼을 뽑아 드는 방법까지 (그리고 칼을 꽂아두는 방법까지) 배운다. 아무려면 칼 잡는 방법도 모를까 봐 이런 것도 가르쳐주나 싶을 텐데, 사실 이게 꽤 어렵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 다르다 보니 이거다 싶게 죽도를 잡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잡는 게 더 좋던데’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어쨌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죽도 잡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왼손의 새끼손가락이 칼자루의 끝에 오도록 하여 조여 잡고, 엄지와 검지는 가볍게 붙인다. 오른손은 코등이(칼 방패)에 바짝 붙여서 부드럽게 잡는다. 죽도의 중심에 양손의 손아귀(엄지와 검지 사이)가 일치하도록 잡는다. 흔히들 달걀을 쥐는 것처럼 죽도를 잡으라고 한다. 달걀이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만큼 강하게, 달걀이 깨지지 않을 만큼 살살. 그런데 이 간단한 ‘죽도 잡는 방법’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첫째, 코등이는 상대의 손목치기로부터 내 손목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생겨난 것인 만큼, 오른손은 반드시 코등이에 바짝 붙여서 잡아야 한다. 그러면 왼손과 오른손의 간격이 칼자루의 길이만큼 벌어지게 된다. 죽도마다 병혁(칼자루)의 길이가 다르고, 사람마다 체형이 달라서 어지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왼손과 오른손의 간격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보통 왼손과 오른손 사이의 간격이 길면 (칼이 가볍게 느껴져서)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간격이 좁으면 손목과 어깨에 무리가 가긴 하지만 칼을 휘두를 때 더 멀리, 더 강하게, 더 다양한 궤적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둘째, 왼손잡이는 어떻게 잡아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어떤 운동이든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 이야기인즉슨 왼손잡이들은 거의 오른손잡이들과 상대해본 경험이 많지만,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잡이를 만날 일이 (특히 시합장에서)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와 비교하면 ‘경험’이라는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반면에, 여러 사람과 연습할 때, 특히 허리 치기 연습을 할 때 왼손잡이들은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과 부딪힐 우려가 있기에 훨씬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또, 각종 심사를 볼 때 약속 대련의 형식인 “검도의 본”이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남보다 훨씬 어려워할 가능성도 있다. (오른손잡이들이 평소에 해 온 것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동작을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죽도를 잡을 때 앞에 있는 손은 주로 죽도 위치 조정의 역할, 뒤에 있는 손은 주로 죽도를 휘두르는 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때, 오른손을 앞에 두고 죽도를 잡는 자세는 오른손잡이들의 경우 잘 쓰는 손을 위치 조정 쪽에 비중을 두고, 왼손잡이들의 경우 잘 쓰는 손을 힘 조절 쪽에 비중을 두고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대부분 왼손잡이도 오른손을 앞에 두고 죽도를 잡는다. 하지만 왼손을 오른손 앞에 두고 죽도를 잡지 말라는 규정 같은 것은 없다. 편한 대로 하자. 단 불편함은 당신의 몫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칼을 뽑아 들고(죽도는 칼집이 없지만, 어쨌든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든다고 생각하고) 다시 칼을 꽂아 넣는 법에 대해 배운다. 칼을 뽑는 방법을 보통 발도(拔刀) 또는 “뽑아 칼”이라 하고, 칼을 넣는 방법을 납도(納刀) 또는 “꽂아 칼”이라 한다. 발도는 가장 기초적이고 간단한 동작이다. 상대를 보고 칼을 뽑아 든다. 그리고 칼끝은 상대의 목(또는 미간)을 향해 겨눈다. 처음 배우는 발도는 이게 전부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할 때 오른손으로 칼자루 앞부분을 잡고 왼손으로 칼자루 뒷부분을 잡는다. 두 발을 모은 상태에서 오른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간다(왼손잡이라면 반대로 칼을 잡고 왼발이 앞으로 나갈 것이다). 허리를 펴고 몸을 바로 세운다. 왼손 손바닥은 칼자루 끝부분을 완전히 감싸 쥔 채로 단전 앞에 닿을 듯이 둔다. 양쪽 겨드랑이에 달걀을 하나씩 끼운 듯한 느낌으로 어깨와 팔꿈치에서 힘을 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침견수주(沈肩垂肘), 즉 어깨와 팔꿈치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것은, 모든 무술과 운동에서 강조하는 중요한 비법이다.
자, 상대를 향해 칼을 뽑아 들고 칼끝으로 상대의 목을 겨눴다. 이 자세가 중단세(中段勢)다. 당연히 상단세(上段勢)도 있고 하단세(下段勢)도 있지만, 당신은 이제 막 칼을 뽑았다. 중단세부터 익숙해지자. 이 상태에서 칼을 다시 꽂아 넣고 뒷발을 앞으로 끌어당겨 발을 모은다. 이것이 납도 또는 꽂아 칼이다. 생각보다 어색한 동작이고 여기까지 여러 번 반복하느라 당신도 지쳤을 것이다. 오늘 당신의 선배들이 요란한 기합 소리를 내며 치고받고 연습하는 동안, 거울을 보며 칼을 뽑았다가 꽂기를 무수히 반복한 당신. 수고했다. 당신도 이제 한 발 내디뎠다. 검도를 향해.
요약해보자.
1. 인사를 잘하자.
2. 거울과 친해지자. 반복 연습만이 당신의 자세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