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를! 사랑합시다!

230204

by 베짱이 나

푸른 열람실, 크고 깔끔한 다용도 건물, 24시간 열린 학습 공간, 편안한 소파가 있는 휴식 공간… 우리 학교에는 쾌적한 장소가 많지만 내가 집중해야 할 때마다 찾는 곳은 과방이다. 교육학과 학우들과 공유하는 작은 방 하나. 어학시험을 3주 앞둔 오늘도 과방으로 향했다. 왜 이곳에서는 유독 집중이 잘 될까? 어느 방송에서 접한 커피 가게 효과가 떠올랐다. 카페처럼 마음대로 통제 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가장 몰입을 잘한단다. 음악과 문학, 물리학 전문가가 입을 모았다. 그들 말대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경계에 있는 공간은 카페뿐이 아니라고 문득 생각했다. 과방이 가진 폐쇄성과 개방성 사이 그 무언가를 좋아한다. 이곳에는 시계나 창문이 없어서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마치 백화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는 사람처럼. 그러나 과방은 집과는 다르다. 언제든지 누군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 과방 안 나는 어둠에 가려진 간수 감시를 의식하는 판옵티콘 안 죄수 같다. 조용하고 편리하지만 아늑하지만은 않은 이 공간은 공부에 적절한 긴장감을 더한다. 실용적인 측면을 살피자면 콘센트나 충전기, 우산이 구비되어 있고, 냉·난방을 조절할 수 있으며, 바퀴 달린 의자도 없다. 곧 대청소를 할 모양인지 오늘은 평소 벽에 걸려 있던 학우들 사진이 모두 치워져 있었다. 고개를 들면 빼곡한 전공 서적, 책상 옆에는 적당히 어수선한 학우들 흔적. 고등학생 때 점심시간마다 빈 교실에서 공부하던, 그러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창문 너머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남학생들을 구경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이유를 떠올렸지만 역시 음악을 틀어놓을 수 있음이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지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온 Y 언니에게 외국 대학교는 우리나라와 무엇이 달랐는지 물었다. 언니는 그곳 학생들이 모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는데. 장학금을 자주 받는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공부를 마치고 과방을 나오니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겨울 방학 학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나는 현실 세계에 가상 세계를 덧입힌 증강현실 게임처럼 곳곳에 묻은 기억을 돌이켰다. 작년 겨울, 과방에서 수업 실연을 연습한 뒤 귀갓길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 추운 날, 입김도 잊은 채 광장 잔디밭에서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한참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과제를 마치고 찬 밤공기를 맞으며 희미한 별을 헤아리는 것만큼 성취감을 주는 일은 드물다.

며칠 전에는 도서관에서 반가운 알림이 왔다. 한 달 가까이 기다린 예약 도서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곳 서고 입구는 2층이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널찍한 자료실을 지나면 외국 원서로 가득한 서고가 나온다. 모국어로 쓰인 책을 찾으려면 유난히 빽빽한 책장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 서고로 내려가야 한다. 책만이 가득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서고 곳곳을 뒤적이며 정신을 차려 보니 한 손에는 예약한 책 한 권, 다른 손에는 예약하지 않은 책 세 권이 들려 있었다. 참새는 방앗간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국에서 박사하기』.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 받은 바로 그 책이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대학원생이 직접 국내 인문·사회 대학원과 학계에서 경험한 일을 소개한다. 2년간 학부생으로 경험한 대학은 책에 서술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느끼는 대학을 돌아보았다. 교수와 학부생은 그 공간을 이루는 구성원 중 작은 부분일 뿐이다. 밤늦게까지 불 켜진 도서관과 학생 자치 공간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수십 년째 새내기를 맞이하며 지역 상권을 지키시는 상인 분들, 학교 건물 곳곳 이름을 새긴 교우들, 직원 분들, 우리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식당가 쪽 후문에서 남색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게시판을 읽고 있었다. '모 대학교는 대학원생이 만만하게 보이십니까'라고 시작하는 대자보였다. 내용을 전부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내가 빌린 책을 쓴 저자들과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나의 모교를 사랑하자. 학부를 졸업한 뒤에도 이곳과 어떤 인연이 남아 있을지—또는 시작될지—모르는 일이다. 작년 여름, 뜨거웠던 축제에서 하늘이 들을 정도로 외치고 땅이 울릴 정도로 뛴 그날의 응원가를 되뇐다. 전주만으로도 울컥해지는 그 노래. "여러분은 이곳을 사랑하십니까? 교! 연! 가! 우리 학교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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